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경작지를 팔아서 양도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5. 明文(경작지를 팔아서 양도한 증명서)乾隆參拾貳年丁亥五月十九日梁義赫處明文.右明文事段 要用○[/所]致 文永碩處買得田 古升旨員 皮牟○○[/壹石]付只田 肆標段東高 宗裕西姜氏南梁聖○[/煥⋅煖]北梁言植等田 肆標 分明爲在田考[/庫] 價本段正木參疋參拾尺 準此捧 上爲遣 本文記幷以永永放賣爲去乎 日後 良中子孫族中 相爭雜談之弊是去等 持 此文記 告官卞正爲臥乎事 田主 高明業 (수결) 筆執 文遇師 (수결) 건륭 32년 정해(영조 43년 1767) 5월 19일 양의혁에게 준 명문. 이 증명서를 주 일은 필요하게 쓸 곳이 있었기로 문영석에게 사들인 밭 고승지원(고승이 지경)에 있는 겉보리 한섬지기 밭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고종유 서쪽에 강씨 남쪽에 양성[환⋅완] 북쪽에 양언식 등의 밭으로 사방 경계표지가 분명한 밭이고 값은 정목 3필 30자로 하여 이에 따라(준하여) 값을 받고 이 문기와 아울러 영영 내놓아 팔았으며 일후에도 자손과 가족 중에 다투거나 잡담을 하는 폐단이 생기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알려 바로잡을 일이다. 밭주인 고명업 (수결) 쓴 사람 문우사 (수결) *3행의 일곱째 여덟째 글자는 모양으로 추정하기가 어렵다. 위에는 卞(법⋅분별하다 변) 자의 가로획을 왼쪽으로 길게 그은 모양이며 아래쪽에는 辵(가다서다할 착⋅책받침 부) 자의 초서 모양으로 乙(새을) 자처럼 썼다. 좀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나, 壹(한 일) 자의 초서를 연상하게 한다. 이렇게 쓴 문서가 석 장 정도 보인다. 壹 자로 탈초한다. 또 3행 첫머리의 ‘古升旨員(고승지원)’은 지명으로 보인다.≪남제주군고유지명≫ 상창리 항목에 ‘고송목이/고승목’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위치 : 산 16번지 상⋅하창리 공동목장 안. ⋅유래와 현황 : 예전에 고송이라고 불리우는 이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데서 연유한 이름. 지금은 상⋅하창리 공동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라고 소개하였다. *爲臥乎(위와호)는 ‘하누온’으로 읽으며, ‘-하온’의 이두표기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5
첨부파일
05. SAM_6557.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