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상환문(빚 갚음으로 경작지를 상환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9. 明文(빚 갚음으로 경작지를 상환한 증명서)乾隆伍拾參年戊申肆月初拾日梁國勳處相換文.○[/右]相換事段 當此灾年 生道誠難故 正木貳○[/疋]僄(/價) 貸下資生 而報給無路故 壹疋半僄(/價)○(成)古池員 粟捌升付田庫 加捧後 祖父主自起是○[/在] 洞下味洞員 拾片畓租種壹斗付 肆標段東○[/及]北賣者田南趙氏田西金光洙畓 肆標分明○[/是]在畓庫 同人處永永相換爲乎矣 日後子孫族類中 若有雜談之弊 則持此文記 告官卞事.畓主 吳○○ (수결)執筆 金聲魯 (수결)건륭 53년 무신(정조 12년 1788) 4월 초10일 양국훈에게 준 상환문.[이] 상환한 일은 이런 흉년을 맞아 살 길이 참으로 어려운 까닭으로 정목 2[필]의 값을 빌려다 생계를 도왔다. 그러나 갚을 길이 없는 까닭으로 (정목) 1필 반의 값으로 ○고지원(○고지원 지경)에 있는 좁(씨) 여덟되지기 밭을 더 준 뒤에, 할아버님이 손수 경작하시던 통하미통원(통하미통 지경)에 있는 열 뙈기 논 볍씨 한마지기며 사방의 경계표지는 동쪽[과] 북쪽은 산 사람의 밭이고 남쪽은 조씨의 밭이며 서쪽은 김광수의 논으로 사방 경계표지가 분명한 논이며 동인(양국훈)에게 영영 서로 바꾸었으니 일후에 자손이나 가족의 무리에서 만약 잡담하는 폐단이 생기거든 즉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알려 바로잡을 일이다.논주인 오○○ (수결)쓴 사람 김성로 (수결)*3행 첫 글자는 문맥으로 보아 ‘疋’ 자로 추정된다. 그리고 둘째 글자는 ‘僄(가벼울 표)’ 자를 썼는데 문맥으로 보면 ‘價(값 가)’를 써야 할 것이다.*4행의 ‘○古池員’은 지명인데, 위 문서에 기록된 지명의 소재지가 상창리라고 보면, ‘성고지원’이 될 듯하다. 아래 도광 11년 문기에 ‘成古池員’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成古池員’을 ‘성고못 지경’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남제주군 고유지명≫ 상창리 항목에서 ‘성구못’을 소개한 내용이다. 성구못/성구동(城龜洞)/웃창고내/상창리(上倉里).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5
첨부파일
09. SAM_6509.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