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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10. 明文(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乾隆伍拾伍年庚戌正月十七日李德老處明文.右明文事段 矣父山用於姜座首田中是如乎 山価報給○[/勢]難乙仍乙于 不得已同人處 正木二疋貸得報給後 価本段矣父衿得田 朝近金員粟壹斗七刀付 李廷賢處買得○○(/田庫)四標段北賣者田東姜呂智田南金順宅田西吳命祚田 四表分明 田庫 放賣爲去乎 日後若有改談之弊是去等 持此文 卞政[/正]事. 田主 姜呂壽 (수결) 筆執 姜呂智 (수결) 本以妻家未分田 君川員畓租 三升付衿下是如可 還置補祭條後 代洽(/給)此田 矣以懸註 後考次.건륭 55년 경술 정월 17일 이덕로에게 준 명문.이 명문의 일은 나의 아버지의 묘를 강좌수의 밭 가운데 썼는데 산터 값을 보답할 [형편이] 어려우므로 부득이 同人(이덕로)에게 정목 2필을 빚으로 얻어서 (산터 값을) 지급한 뒤에, 값은 나의 아버지가 깃으로 얻은 밭 조근금원(조근금 지경)에 있는 [좁씨] 한말일곱되지기와 이정현에게서 사들인 ○○[밭으로] 사방 경계표지는 북쪽에 판 사람의 밭 동쪽에 강여지의 밭과 김순택의 밭 서쪽에 오명조의 밭으로 사방 경계표지가 분명한 밭을 내어팔았으니, 일후에 만약 말을 고쳐 하는 폐단이 생기거든 이 글로 바로잡을 일이다.밭주인 강려수 (수결)쓴 사람 강려지 (수결)본래 처가에서 경작지를 나누어주지 않았는데 군천원(군천 지경)에 있는 논 볍씨 석 되지기를 깃(몫)으로 내려 받았다가 제조(제월전)로 되돌려 보충된 뒤에 대신 이 밭을 받았다. 내가 주석을 붙였으니 뒤에 살필 일이다.*乙仍乙于(을잉을우)는 ‘乙仍于(을지즈로)’를 표기한 것으로 본다. ‘-에 따라. -이기에’의 의미인 이두표기다.*貸得(대득)을 축자역하면, ‘빌려서 얻다’가 된다. 빚을 얻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위 문서에서는 정목 2필을 더 얻었다는 의미로 본다. 옛 문헌에 ‘柳德己要我貸得一百兩(유덕기가 나에게 100냥을 빚을 얻어 달라고 청하였으므로)’ 같은 용례가 보인다.*4행의 ‘朝近金員(조근금원)’은 지명으로 보인다.*7행의 ‘卞政事’를 축자역하면 ‘바로잡아 다스릴 일’이 된다. ‘卞正事’를 쓰려 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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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6
첨부파일
10. SAM_65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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