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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불망기(빚을 농경지로 갚은 문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14. 不忘記(빚을 농경지로 갚은 문서)嘉慶二十三年 戊寅十二月初九日 梁源繼前不忘(記) 右不忘記事段 癸亥分朴常文處 夫事 花元田後牧 場員 粟種三斗 付 旣以渠之入功 田 正木二疋準捧 放賣是如可 其 後庚午分打量 時 以吳東菜名 下 粟種七升付 縣去除出矣 今 者又正木一疋三十尺 更爲準捧後 四合粟 種二斗三升付 都爲 永永放賣爲去 乎 日後子孫族 屬中 若有雜談 가경 23년 무인(순조 18년 1818) 12월 초9일 양원계에게 준 불망기. 이 불망기의 일은 계해년 즈음에 박상문에게 부사(?) 화원전 후목장원(후목장 지경)에 있는 좁씨 서마지기는 이미 그 사람(박상문?)이 공들인 밭이니 정목 2필을 받고 팔았다. 그 뒤 경오년 즈음에 측량할 적에 오동채의 명의로 있는 좁씨 일곱마지기를 대정현에 가서 제출하였다.(매달아(덧붙여) 주었다) 지금 다시 정목 1필 30자를 더하여 정한 값으로 받은 뒤에 사합(四合) 좁씨 두말석되지기를 모두 영영 팔았으며 일후에 자손과 가족의 무리 중에 마약 잡담하는 (폐단이 생기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알려 바로잡을 일이다). *5행의 ‘癸亥分’은 ‘계해년께, 계해년 즈음, 계해년 무렵’의 의미로 보인다. 옛 문헌에 ‘乙酉年分 以校正郞始得見面(을유년께 교정랑(校正郞)으로 있을 때 처음 얼굴을 보았으며)’ 같은 용례가 보인다. 가경 23년에서 가장 가까운 계해년은 순조 3년(1803)이다. *夫事(부사)를 축자역하면, ‘지아비의 일(사연)’이 된다. 문맥으로 보면 혹 ‘지아비가 일하다’로 풀이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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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8
첨부파일
14. SAM_656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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