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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불망기(흉년에 얻은 빚갚음으로 농경지를 준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20. 不忘記(흉년에 얻은 빚갚음으로 농경지를 준 증명서) 道光貳拾壹年辛丑拾貳月拾捌日梁至淇兄弟處不忘記. 右不忘記事段 矣身當此荒年 生道無路故 右人兄弟處 正木壹疋二十尺貸出 保命後 他無報給之物(乙)仍于 自巳[/己]入功火田 毋[母]鹿田員 粟根(/種)參斗付只 肆標段東朴春信田西子[/乃⦁及]比 林藪南墻垣 標分明田庫 同人處永永放 賣爲去乎 日後如有親族中 雜談之弊是 去等 持表文 告官卞正事. 田主 高元悏 (수결) 筆執 朴春富 (수결) 證人 金宗民 (수결) 도광 21년 신축(헌종 7년 1841) 12월 18일 양지기 형제에게 준 불망기. 이 불망기의 일은 이몸이 흉년을 맞아 살아갈 방도가 없기로 이 사람(양지기) 형제에게 정목 1필 20자를 빌려다가 생명을 보존한 뒤에 달리 갚을 물건이 없으니 내가 공들인 화전 모록전원(모록전 지경)에 있는 좁씨 서마지기며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박춘신의 밭 서쪽에 자[/내⦁급]비림수(자비림곶) 남쪽에 담장으로 경계가 분명한 밭을 동인에게 영영 방매하였으며 일후에 만약 친족들 중에서 잡담하는 폐단이 있거든 이 글을 가지고 관청에 알려서 바로잡을 일이다. 밭주인 고원협 (수결) 쓴 사람 박춘부 (수결) 증인 김종민 (수결)*이 문서는 토정비결을 인쇄한 종이의 뒷면에 썼다. *4행 열째 글자는 巳(뱀 사) 자로 보인다. 문맥으로 보면 己(자기 기) 자나 已(이미 이) 자라야 할 듯하다. 自己入功火田이거나 自已入功火田이거나 ‘스스로 (이미) 공을 들인 화전’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또 뒤에 쓴 毋(말 무) 자는 뒤의 도광 22년 문서에는 ‘母鹿田員’이라고 썼다. 이 ‘母鹿田員(모록전원)’은 지명으로 본다. ‘모록왓 지경’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남제주군 고유지명≫ 상천리 항목에 ‘모록밭’이라는 지명이 보인다..⦁유래와 현황 : 상천리의 이름, 구전에 의하면 옛날에 흰 사슴이 ‘모록궤’에 와서 새끼를 낳았으므로 이에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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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20. SAM_654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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