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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업작기(셋째아들에게 경작지를 준 문기)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24. 業作記(셋째아들에게 경작지를 준 문기) 道光二十九年己酉五月二十五日三子處業作記. 外南堂旨軍山田 皮牟一石付內 西下十斗付 家座田 粟種參升付南金尙敏家東吾田 成九池員 金尙□處買得田 粟種四升付東姜宗彬田 坤吾羅洞山座田 東邊買得田 皮牟二斗付東姜宗珍畓 花圓田粟種二斗五升付 東邊參升付東小路 財主 梁源繼 (수결) 도광 29년 기유(헌종 15년 1849) 5월 25일 셋째아들에게 준 업작기. 외남당지(외남당ᄆᆞ루)의 군산밭 겉보리 한섬지기에서 서쪽 아래 부분 열마지기와 집이 앉은 밭 좁씨 석되지기로 남쪽은 김상민의 집 동쪽은 내 밭인 곳과 성구지원(성구못 지경)에 있는 김상□에게서 사들인 밭으로 좁씨 넉되지기로 동쪽은 강종빈의 밭인 곳과 곤오라동산의 좌전 동쪽 가에 있는 사들인 밭 겉보리 두마지기로 동쪽은 강종진의 논인 곳과 화원전 좁씨 두말닷되지기의 동쪽 가로 석되지기 동쪽은 소로. 재주 양원계 (수결) *業作(업작)은 작업(作業)과 같은 말이다. 농사일을 이르기도 한다. 옛 문헌에 ‘焉能謀業作(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랴)’, ‘入國朝 戴廣簷平頂笠 織竹爲簷 多至三百回. 金堤爲上 濟州之産次之. 流布一邦 名以濟州梁臺云. 又業作梳篦 以靈巖羅州稱.(조선에 들어와서 챙이 넓은 평정립을 썼는데 대오리를 엮어 챙을 만들며 많게는 300번 감는다. 김제에서 만든 것이 상품이며 제주에서 만든 것은 버금에 해당한다. 나라에 퍼진 것을 일러 제주의 양태라 한다. 또 얼레빗과 참빗을 만드는데 영암과 나주의 것이 좋다고 일컫는다)’ 같은 용례가 보인다. 業作記(업작기)는 농사를 짓기로 약속하고 경작지를 주어서 만든 문서로 보인다. *2행의 ‘外南堂旨(외남당지)’의 堂(집 당) 자는 글자 모양으로 보면 臺(누대 대) 자의 초서 모양으로 보인다. 다른 문서의 기록을 참작하여 堂으로 탈초한다. ‘外南堂旨’를 ‘외남당ᄆᆞ루(외남당마루)’로 풀이할 수 있겠다. 南堂은 창천리 1272번지 일대를 이르는 지명이다. 이곳 어디에 ‘外南堂’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쓴 ‘軍山田(군산전)’은 지명이 아니고 군산(軍山 굴메오름)에 있는 밭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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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1
첨부파일
24. SAM_656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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