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경작지를 매매한 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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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明文(경작지를 매매한 증명서) 咸豐元年辛亥二月二十七日吳載札處明文. 右明文事段 要用所致故 不得已吾矣流 來田 粟種二斗付在於城古池員 而四標段東 梁 田西姜智祥田及吳彦鳳田南小路 北姜興磻田也 決価拾壹疋 而右人處 如 數準捧後 此田庫永爲放賣是矣 本 文記段 他田幷付故 不得許給 日後 或 有子孫中 雜談之弊 則以此文記卞正事. 田主 自筆執 姜遇磻 (수결) 함풍 원년 신해(철종 2년 1851) 2월 27일 오재찰에게 준 명문. 이 명문의 일은 사용할 곳이 있어서 부득이 나에게 내려온 밭 조의 씨앗 두 되지기가 성고지원(성고못 지경)에 있고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양씨의 밭 서쪽에 강지상의 밭과 오언봉의 밭 남쪽에 소로 북쪽에 강흥반의 밭이며 결정한 가격은 11필이며 이 사람에게 수량에 맞게 받은 뒤에 이 밭을 영원히 내어 팔았다. 이 문기는 다른 밭을 아울러 주는 까닭으로 부득 허급한다. 일후에 혹 자손들 중에 잡담하는 폐단이 있으면 곧 이 문기로 바로잡을 일이다. 밭주인 스스로 쓰다 강우반 (수결) *1행의 ‘吳載札(오재찰)’의 札을 원문에 木 변에 위에 丶(점 주) 아래 乙(새을) 자를 붙인 모양이다. 礼(예의 례) 자와 비슷한 모양이다. 礼는 오른쪽에 匕(비수 비) 자를 쓰기도 한다. 아마 이름자에는 札보다 礼를 쓴 것이 아닌가 여긴다. 그러면 이름이 혹 ‘吳載礼(오재례)’일 수도 있겠다. *是矣(시의)는 이두표기로 ‘-이다’의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