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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30. 明文(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咸豐陸年丙辰十二月十二日吳氏處明文. 右明文事段 吾矣 姜宗根處 下猊境楊綠涯 員 租種參斗付 而価本爲百疋也. 財力不及故 吳氏處正木三十參疋十參尺果 金以振處正 木參十參疋十參尺乙 貸用後 年久不報故 同 畓三分兩人處分割放賣. 故租種一斗付十五 片畓乙 四標段東買人畓西任齊赫畓南金以振 畓北姜鳳舜畓 庫乙 標內分明 右人處永永放賣是矣 本文記段 他畓幷付故 不得許給爲 去乎 日後雜談之弊是去等 持此文記憑考 事. 畓主 秦瑗 (수결) 筆執 金以豪 (수결) 增[/證]人 李漢日 (수결) 함풍 6년 병진(철종 7년 1856) 12월 12일 오씨에게 준 명문. 이 명문의 일은 내가 강종근에게서 하예리 지경 양록애원(장록애 지경)에 있는 볍씨 서마지기를 (사들이면서) 값은 100필이었다. 재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오씨에게서 정목 33필 13자와 김이진에게서 정목 33필 13자를 빌려다 사용한 뒤에 해가 오래되도록 갚지 못하였으므로 이 논을 셋으로 나누어 두 사람에게 내어 팔았다. 그러므로 볍씨 한마지기 15편(뙈기) 논을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산 사람의 논 서쪽에 임제혁의 논 남쪽에 김이진의 논 북쪽에 강봉순의 논인 곳을 경계표지가 분명하니 이 사람에게 영영 방매하였다. 이 문기는 다른 논을 아울러 주었으므로 부득 허급하였으니 일후에 잡담하는 폐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빙고할 일이다. 논주인 진원 (수결) 쓴 사람 김이호 (수결) 증인 이한일 (수결) *2행의 ‘下猊境楊綠涯員(하예리양록애원)’은 지명으로 보인다. 下猊里는 지금은 서귀포시 하예동이다. 楊綠涯員은 ‘양록애 지경’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3
첨부파일
30. SAM_659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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