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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불망기(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불망기)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35. 不忘記(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불망기) 同治六年丁卯八月十八日梁濟英姜思信梁濟龍金 致福金昌世梁濟敏梁濟成秦錫勳八人處不忘記. 右不忘記事段 要用所致故 右人等處 白木伍疋貸用後 価報段 出處無路故 七所東地馬能洞員 粟 種貳斗付只報給是矣 四標段東吳允昌田西吳起伯田南姜瑞宗田北吳允昌田 標分明田庫乙 永永放賣爲 去乎 以表文憑考事. 田主 自筆執 秦□[/瑗] (수결) 동치 6년 정묘(고종 4년 1867) 8월 18일 양제영과 강사신과 양제룡과 김치복과 김창세와 양제민과 양제성과 진석훈 여덟 사람에게 준 불망기. 이 불망기의 일은 사용할 곳이 있어서 이 사람들에게서 백목 5필을 빌려서 사용한 뒤에 값을 갚음은 내놓을 방도가 없으므로 칠소장 동쪽 지마능동원(지마능동 지경)에 있는 조의 씨앗 두마지기로 보답하여 지급한다.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오윤창의 밭 서쪽에 오기백의 밭 남쪽에 강서종의 밭 북쪽에 오윤창의 밭으로 경계표지가 분명한 밭을 영영 내어 팔았으며 이 표문으로 빙고할 일이다. 밭주인 스스로 쓰다 진[원] (수결) *4행의 ‘地馬能洞員(지마능동원)’은 지명으로 보인다. 혹 ‘馬能洞員’이 지명일 수도 있다. 그러면 ‘七所東地(칠소동지)’는 ‘7소장 동쪽 지역’으로 풀이할 수 있다. *表文(표문)은 신하가 자신의 생각을 임금에게 적어 올리는 글을 이른다. 옛 문헌에 ‘개원(改元)을 축하하는 정동성의 표문(表文)을 받들고 경사에 가서 그대로 머물렀다’, ‘전 밀직사(密直使) 조임(趙琳)을 보내어 중국 서울에 가서 표문(表文)을 올리게 하였다’ 같은 용례가 보인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4
첨부파일
35. SAM_657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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