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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불망기(빚을 갚음으로 경작지를 판매한 문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45. 不忘記(빚을 갚음으로 경작지를 판매한 문서) 辛卯三月日梁齊暎處表文不忘記. 右表文事段 右人處 己丑七月分 錢文貳拾兩価 川網員 火田粟種參斗付只 四標段東 周召仁田西名不知趙哥田南朴哥田北任成七 田 四標分明是遣 右人處 本記幷永永放賣 是矣 日後更言之弊 則此不忘記卞考事. 田主 張京云 (수결) 筆執 李萬亨 (수결) 신묘년 3월 일 양제영에게 준 표문인 불망기. 잉 표문의 일은 이 사람에게서 기축년 7월 즈음에 돈 20냥의 값으로 천망원(천망 지경)에 있는 화전 좁씨 서마지기며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주소인의 밭 서쪽에 이름을 알지 못하는 조가의 밭 남쪽에 박가의 밭 북쪽에 임성칠의 밭이며 사방 경계표지가 분명하고 이 사람에게 이 문기와 아울러 영영 내어 팔았으니 일후에 거쳐 말하는 폐단이 있거든 곧 이 불망기로 바로잡아 고찰할 일이다. 밭주인 장경운 (수결) 쓴 사람 리만형 (수결) *이 문서는 연호를 쓰지 않고 辛卯年(신묘년)만 기록하였으니 연도를 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서를 받은 梁濟英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는 앞에 동치 8년(고종 6년 1869)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신묘년은 고종 28년(광서 17년 1892)이다. *3행의 ‘川網員(천망원)’은 지명으로 보인다. ⟪남제주군고유지명⟫상천리 항목에 ‘천망동(川望洞)’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쳇망어음/천망동(川望洞) ⦁위치 : 상천리 15번지 일대. ⦁유래와 현황 : 약 150년 전에 설촌된 동네로, 구전에 의하면 설촌 당시 한 풍수사가 지나가다 “이 마을은 저 냇물을 바라보는 형이다”라고 한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 마을 근처의 축산농가에서 마소를 방목하는 목장 지대로 이용되고 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1
첨부파일
45. SAM_657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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