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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말을 사고 값은 경작지로 지급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52. 明文(말을 사고 값은 경작지로 지급한 증명서) (嘉慶十二)年丁卯九月二十五日梁國勳處 (明文).右明文事段 多生身病 行步難處故 上馬出入次 以拾疋価騎馬壹匹 及正木壹疋 加捧 後伍疋価段 參間家舍壹差報給 是遣 陸疋価 金穎薰處買得是在 乭 好只員 粟種壹斗伍刀付只 東梁處仁田 西文尙悌田南加耕(田)北李廷薰田 四標分明 田庫乙 本文記幷以同人處 永永放賣爲 去乎 日後 若有子孫族類中 雜談之弊 是去等 持此文記 告官卞正事. 田主 自筆執 秦慶萬 (수결) (가경 12)년 정묘(순조 7년 1807) 9월 25일 양국훈에게 준 (명문). 이 명문의 일은 몸에 병이 많이 생겨서 걸음걸이가 힘든 까닭으로 말은 타고 나들이하려고 10필의 값인 기마 한 마리를 정목 1필을 더하여 지불하기로 한 뒤에 5필의 값은 3간집 한 채[差]로 갚아 지급하며 6필의 값은 김영훈에게서 사들인 돌호지원(돌호지 지경)에 있는 조의 씨앗 한 말 닷 되지기며 동쪽에 양처인의 밭 서쪽에 문상제의 밭 남쪽에 가경(전) 북쪽에 이정훈의 밭으로 사방 경계표지가 분명한 밭을 이 문기와 아울러 동인에게 영영 내어 팔았으니 일후에 만약 자손과 가족의 무리 중에서 잡담하는 폐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알려 바로잡을 일이다. 밭주인 스스로 쓰다 진경만 (수결) *양국훈(梁國勳)이 받은 명문(明文)이 건륭50년(을사 1785)에 작성된 것이 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정묘년은 가경12년(1807)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위 문서는 가경12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出入次(출입차)를 ‘나고 들고 하려고’로 풀이한다. 出入은 ‘드나들다, 나들다’, 次는 ‘-하려고’의 뜻이다. 용례는 ‘연구차’ ‘관광차’ 등처럼 사용한다. *加捧(가봉)은 정해진 액수 외에 돈이나 곡식을 더 징수하는 것을 이른다. ‘값을 더 얹어서 지불하다’의 의미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2
첨부파일
52. SAM_65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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