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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삼읍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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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 列邑地圖 謄上令에 따라 1872년에 전라도 각 府·郡·縣·鎭에서 만들어 올린 彩色地圖이다. 지도에 만든 때가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珍島府地圖≫ <奎 10461>의 建置沿革에 ‘同治五年丙寅陞爲府’라 되어 있음을 보아 1866년 이후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또 각 지도 표지 위쪽에 붉은색 첨지에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는데 이는 1872년에 만들어진 他道地圖의 일련번호와 연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들도 地圖謄上令에 따라 1872년에 만들어졌음이 확실하다. ≪濟州三邑誌圖≫ <奎 10482>에는 大靜·旌義地圖가 첨부되어 1帖 3張이며, 南桃鎭은 鎭誌와 지도 2장이고 나머지는 한 지역에 1장씩이다. 地圖의 표지제명에는 全羅右道, 全羅左道, 全羅道 등 道가 표시되었다. 지도마다 규장각 도서번호가 달리 붙여져 있다. 郡·縣지도와 鎭·浦·島지도별 규장각 도서번호는 다음의 表 1·2와 같다(가나다순). 지도의 표현 양식은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官邑과 山川 道路 烽臺 倉庫 場市 面里, 官邑과 각 面, 지역 사이의 거리, 境界까지의 거리 등이 표시되어 있다. 또 지도의 여백에 항목의 출입은 있으나 建置沿革, 程途, 山城, 烽燧, 船隻, 關坊 등이 기재되어 있다. 해안·섬의 郡縣이나 鎭의 지도에는 水路 및 水深도 밝혀져 있다. 南桃浦鎭은 한 장은 鎭誌로서 邑誌 항목과 같이 程途, 戶數, 建置沿革, 鎭名, 形勝, 城池, 官職, 山川, 風俗, 公廨, 倉庫, 糶糴, 船隻, 軍兵, 防軍, 掌內島嶼가 기재되었다. 任實縣地圖와 海南縣地圖에는 戶口數와 結總도 기재되어 있다. 지역표시는 面까지만 밝힌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面이하 里·洞까지 표시하여 상세하다. 같은 때 만들어진 他道地圖에 비해서 표기향식이나 체제가 정연한 편이다. <靑山鎭地圖><奎 10515>는 규장각 도서목록에는 ≪忠淸道地圖≫ 항에 포함되었으나 靑山鎭이 康津지방에 있으므로 ≪全羅道地圖≫항으로 옮겼다.

 

제주삼읍전도 濟州三邑全圖, 제주도를 그린 지도로 조선시대의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1872년이 아니다. 大靜, 旌義 등의 고을이 縣이 아닌 郡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95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조선시대에 전라도에 속해 있었고 해방 이후 도제 실시와 함께 분리되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독특한 문화와 풍속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변방에 있으면서도 군사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지도제작이 활발하여 지금도 제주도의 다양한 지도가 남아 있기도 하다. 지도는 육지부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 남쪽이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주위에 干支로 된 24방위를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제주도와 같이 육지부에 인접한 섬이 아닌 경우에는 섬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방위와 주변 지역을 일부 그려 넣기도 했다. 남쪽으로는 중국뿐만 아니라 安南國, 暹羅, 滿剌加, 占城 등의 동남아시아 나라들도 그려져 있다. 기생화산인 오름의 모습을 자세히 그렸고 중산간 지대에는 10개의 목마장을 경계와 함께 표시하였다. 各面에 소속된 마을들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인접한 面과 구분한 점도 다른 지도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군현의 이름과 해안의 鎭名이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표시되었다. 특히 해안의 봉수대와 포구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한라산의 靈室에는 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五百將軍이 그려져 있다.

유형
고지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872
저자명
미상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회
1583
Link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10482_00&vol_no=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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