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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의 창피(昌皮)(1924년 02월 20일) 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濟州)의 창피(昌皮)

  ◇시대(時代)의 변천(變遷)을 따라 조선인(朝鮮人)의 부르지지는 향학심(向學心)과 교육열(敎育熱)은 수년전(數年前)부터 우리 제주도(濟州島)에도 발발(勃發)하야 면면촌촌(面面村村)에 불완전(不完全)하나마 교육기관(敎育機關)이 봉기(蜂起)함은 우리의 전도(前途)를 위(爲)하야 수불치하(誰不致賀)리오 기중(其中) 제주성내(濟州城內)는 천여호(千餘戶)되는 읍지(邑地)로서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일개소(一個所)로 다수(多數)의 취학아동(就學兒童)을 수용(收容)치 못함을 유감(遺憾)으로 생각하든 유지모ㇴ씨등(有志某ㇴ氏等)은 학회(學會)를 조직(組織)하고 다수인사(多數人士)의 찬성(贊成)을 엇어 자(玆)에 명신학교(明新學校)라는 제주유일무이(濟州唯一無二)의 신기관(新機關)이 탄생(誕生)하얏슴은 내외((內外)가 공지(共知)하든바며 우리는 무한(無限)한 희망(希望)을 가젓다 세사(世事)는 추측(推測)이라 제주도민입학교(濟州島民入學校)로 사회(事會)에 촉망(屬望)을 밧든 명신학교(明新學校)도 탄생(誕生)한지 불과 삼년(不過 三年)에 폐교(廢校)되고 마럿다

  ◇이제 그 폐교(廢校)의 전말(顚末)를 누문(漏聞)컨대 즉 경영란(卽 經營亂)이라 동기(動機)는 여하문(如何聞) 학교(學校)의 유지금(維持金)으로 기부금(寄附金)을 적어 논이가 어지간히 만흐며 금액(金額)도 훌륭하게 몇천원(千圓) 몇백원(百圓)이라는 것이 잇섯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大槪) 가면행위(假面行爲)에 지나지 못하야 교사(校舍)는 건축(建築)하얏스나 자금(資金)은 은행(銀行)에서 융통(融通)하엿슴으로 학교(學校)는 은행(銀行)의 저당물건(抵當物件)으로 변(變)하고 교원(敎員)은 외상급료(外上給料)가 만타 매월(每月) 아동(兒童)의 월사금(月謝金)으로 겨우 주린배를 채우게 되는 형편(形便)이 되엿스나 방명록(芳名錄)에 기록(記錄)된 금전(金錢)은 여전(如前)이 화병(畵甁)에 귀(歸)하고 마럿스니 그 참혹(慘酷)함을 가(可)히 추상(抽想)할 것이다 어시호(於是乎) 학교(學校)는 파산선고(破産宣告)를 당(當)하게 되엿다 원통천만(千萬)이다

 

→2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4-02-20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
첨부파일
142.제주(濟州)의 창피(昌皮)(1924년 02월 20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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