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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내지 출가노동 제주도민 속속귀래 이미 4천명에 달하다 (地內出稼 濟洲島民 續?歸來 旣に四千名に達す)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전중(田中) 도사의 이야기

(田中島司のはなし)

부윤, 도사(島司), 군수회의를 위해 광주로 온 전중(田中) 제주도 도사는 말한다. 등에 업은 아이보다도 품에 안은 아이와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제주도는 아무튼 육지지부보다도 세인에게 등한시되고 있는 면이 있는 까닭에 만사의 시설이 늦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해륙에 남은 이익은 적겠지만 10년 11년의 영구적 계획이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일은 매우 많다. 그러나 좀처럼 그 정도의 원대한 시설을 하는 사람도 없고 생각하는 만큼 발전하지 않는 것은 유감일 따름이다. 특히 제주도는 출가노동자의 송금에 의해 도내의 경제를 유지해온 것이어서 인구 20만 명, 현재 4만 명은 내지에서 활동하고 잔류자 중에서도 4만 명은 한때 내지의 물을 먹었던 자이다. 즉 한 집에 2명은 내지에 나갔던 사람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는 것인데 이 무리도 내지의 불경기로 인해 직업을 얻지 못해 1개월 후 4천명은 귀국하고 더욱 계속적으로 귀국할 것이므로 본도의 불황도 한층 심각하게 될 것이다. 또 이 섬의

이출입의 밸런스는 내지 이출 연액 1백만 원, 동 이입 1백4십만 원, 선내이출 1백만 원, 동 이입 1백4십만 원으로 이입 쪽이 7,8십만 원 초과하는데 이것은 이상의 출가노동자들의 송금에 의해 높은 것으로 결산되고 있다. 목하 당지의 산업으로서는 보리작, 조작 외에 연안에 통조림공장 16개소가 있어 ‘전복’ ‘소라’를 어획해서 제조하는 외에 한림에서는 ‘그린피스’를 왕성히 재배하고 그 통조림을 만들어 1일 2백 상자(4다스 입) 1개월 6천 상자를 완성하는데, 그 기간이 짧아도 1개월 이상은 걸리는 모양이다. 따라서 판로는 무진장이어서 오사카(大阪)의 상점을 거쳐 영국 쪽에서도 주문이 온다. 품종은 이것을 넷으로 나누어 대중소로 1호에서 4호까지로 선별하는데 시세는 한 상자에 10원 남짓이다.

미역도 역시 본섬의 특산으로 연액 10만 원 정도를 이출했는데 올해는 발아 때에 폭풍우가 있고 격랑으로 인해 맨 첫 해초의 싹은 제거되고 겨우 두 번째 해초를 채취할 정도여서 그 수확은 예년의 3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지난번에는 군사령관이나 도지사의 내도가 있어 도민은 크게 면목을 세웠지만 그 담화했던 것 같이 축산은 유망하며 또 양계도 현저히 진흥해서 로드와 나고야잡종이 보급되어 계란도 개량되어서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0-09-06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8
첨부파일
35_19300906_337(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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