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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해녀와 전설의 동경 전남의 보고【1】 (海女と傳說の憧 全南の寶庫【一】)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로 시찰 여행(濟州島への視察の旅) 진주 소 산생(晋州 蘇 山生) 근래 전국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농촌진흥운동은 물심양면으로 박차를 가하고 하나가 되어 민력함양과 국부의 증진으로 열중하여 해마다 향상발전의 경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좋지만 농가의 남는 노동력을 합리적으로 각 방면에 이용해서 각종의 부업을 장려해서 부단하게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동시에 적지에 적종을 재배해서 주요작물인 쌀, 보리, 면, 콩 등 외에 소채, 과실이나 특수작물의 생산 내지 가공을 장려해서 다각형적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도 매우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합리적 노동법을 십 수 년 전부터 전남제주도를 시작으로 가깝게는 ○주에 장려해서 착착 실적을 올려서 이 생산품을 가공해서 수급함과 동시에 안정된 경영 하에 공존공영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 죽중(竹中)통조림공장의 활약이다. 이 실황시찰을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 사천군(泗川郡)산업시찰단이었다. 일행은 단장 이군수, 단원 유마(有馬), 소전절(小田切), 강구(江口), 임(林), 항마(恒馬), 이태신, 산북(山北), 고정식, 오촌(奥村), 김시각, 최도향, 삼산(森山), 이등(伊藤), 구광조, 상변(上邊), 중산(中山), 하구(河口), 송영(松永), 각출(閣出). 송포(松浦), 호미(戶梶), 김일환, 신양(申楊), 이석만, 박동식, 소림(小林) 씨 등의 군의원, 읍면장 학교장, 실업가, 기자 등 각 방면을 망라한 20명, 때는 6월 3일 오전 4시, 전날부터 한 약속대로 경남자동차 사천정류소에서 미명의 어둠을 무릅쓰고 집합, 강구(江口), 산북(山北), 이등(伊藤), 중산(中山)의 4 씨가 반장이 되어 4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행장을 정리해서 하동 경유의 코스를 도로 형편에 의해서 함양 경유로 변경해서 5시 출발, 새벽어스름을 가르며 북진한다. 탄탄히 숫돌처럼 평평한 포장도로를 기분 좋게 진주를 통과해서 산청에 들어갈 무렵 드디어 일출을 보았는데 새벽바람이 쏴쏴 옷소매를 걷어 올려 차 위의 쌀쌀함을 느끼면서 7시 함양 도착 입석여관에서 휴대한 따뜻한 술 한잔과 주먹밥으로 조식을 마치고 8시 출발 남원으로 향한다. 조석의 한잔 술에 추위를 잊은 각 차의 일행의 기염이 드디어 좋아진 중에 제주 왕 고을라의 후예라고 칭하는 삼천포 고부읍장의 기염이 무지개처럼 이어지고, 운봉의 고원 일대 또 이에 부화하는 보람이 있어 험준한 2여 리의 사직 고개도 어려움없이 내려가서 9시에 일찍 남원에 도착한다. 기차 개통을 위해 긴래 활기를 보이고 있는 남원은 시구개정의 간선도로도 종횡으로 관통해서 수년 전과는 크게 달라진 발전상을 보이고 잇다. 일행 하차, 명승호남 제일이라고 불리는 광한루 상에서 때마침 개최중인 최변춘양 자수 강습회의 작품미와 단청의 전당을 감상하며 오작교를 건너서 명기 춘향전의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루 앞에서 기념촬영, 10시 출발 순창, 담양을 거쳐 광주로 향한다 이사이에 작년의 대홍수로 도로, 교량, 제방의 유실 되서 아직 복구되지 않은 탓에 교통 곤란한 곳들이 상당히 있다. 산청 김천선과 같이 수해의 흔적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가을의 황혼이다. 12시 광주 도착, 오늘아침 함양에서 전보를 친 오촌(奥村)교장의 지인 김신석 씨를 호남은행으로 방문한다. 씨는 산청군 생초 출신, 전조 임면장 김 씨의 아들, 젊어서부터 일찍이 실업계에 웅비해서,,,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6-25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7
첨부파일
223_19370625_2223(부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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