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인물 전설: 강성익2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1747년에 태어나서 1819년 73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오시는 동안 여러 가지 제주도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바가 많습니다만, 제주도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선조님이십니다. 이분은 워낙 머리가 총명해서 21세에 문과초시에 합격을 하고, 36세에 전시 복시에 합격을 해서 당해 연도에 승문원 교검, 이듬해에 가서는 예조좌랑 병조정랑 등 여러 가지, 여덟 가지 벼슬을 하시면서 조정에서 한 32년 동안 계시다가 외직으로 나오셔서 사천현감, 의성군에 있는 비안현감 그다음 경상도에 참시관, 참시관이란 게 시험 볼 때 감시하는 그런 직책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왔습니다. 제주도에는 내려와 보니까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하셔서 조정에서부터 내려왔는데, 결국 돌아가신 후에 아버님 상을 삼년상을 치르고 조정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삼년상을 치를 적에 어떻게 효심이 강했는데, 지금 자손들은 고분다리, 아 지평의 골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아버지를 안장하면서 3년 동안 거적을 해가지고 흙을 배게 삼아 눕고 거기에 3년 동안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손들은 지금 그 곳을 할아버지가 지평이고, 지평이라는 벼슬을 했는데 사헌부에, 사헌부는 지금 말하자면 검찰이나 감사원 이런 성격이 되가지고 조정을 비판하고 관리들을 규찰하는 그런 직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지평의 골이, 지평 그 벼슬이 정6품 그러다가 정5품으로 장령으로 올라갔습니다. 장령은 사헌부에 대사 한사람 집의 한사람 그다음 아까 말씀드린 장령 두 사람 이렇게 있고 그 밑에 지평에도 두 사람 그 밑에 감찰이 한 24명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검찰의 한 3단계니까 국장이나 과장 이런 정도 조정에서 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 사헌부에 계시다가 쭉 내려와서 제주도 사회에 돌아보니까 94년도 95년도에 갑인년 흉년이 되가지고, 갑인 을묘년입니다 그게. 한말이 계속 되가지고 여러 가지 곡식도 없고 도민들이 상당히 궁핍해지니까 조정에서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겠는데 방법은 없고 그래가지고 도민들이 출발할 때 배 앞에 나와 가지고 살려달라 도민들을 살려달라 그렇게 해가지고 이야길 하니까 밤낮으로 찾아와가지고 자는데도 찾아오고 배 떠나는 데 까지 찾아와가지고 호소를 하니까 그 상황을 그대로 조정에 가서 전달했습니다. 자기가 떠나올 적에 도민들은 자기가 떠나는 배 앞에서 이런 울부짖음이 있었습니다. 해가지고 그때 당시에 이야기가,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가지고 여러 가지로 살길이 막막해가지고 이런데 조정에서 지원을 해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보고 임금님께 아뢰올 수 없어서 지금 아뢰는 겁니다, 해가지고 그 대책으로 자기가 덧붙여가지고 조정에서 건의한 게 뭐냐면, 조정의 비변사에 나와있는 양역을 흉년 때마다 옮겨올게 아니고 제주도에 큰 창고를 하나 짓고 국가에서 하나 지어주고 그러면 삼읍에서 현감들이 하나씩 짓고 그래가지고 당해년도 곡식은 그리 담고 다음 해에는 먼저 들였던 곡식은 바꿔가면서 하면 아무리 흉년이 지어도 그게 쌀이 썩지도 않고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유형
동영상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