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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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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전설: 오흥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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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그 분네가 이제 제주도에 영향을 줘. 그 전에 별시가 한분 있습니다. 그때 어사가 와서 서울 안가고 시험 보는 별신 것은 저 연산군 떠나고 중종 반정 첫해에 한분 별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숙종때도 한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별시가 됐냐 그러면은 그 지금 장희빈 쫓겨나고 장희빈 아들이 경종 아닙니까 경종도 오랜만썩 돌아가부렀단 말입니다. 그럼 그 동생 영조가 왕이되는데 그 영조는 최씨가 나은 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왜그러냐며는 장희빈은 사색당파로 남인에서 세웠는데  장희빈 쫓겨나니까 그래도 왕이 아들이니까 했는데 아들까지 죽으니까 남인들이 갈길이 없는거라. 그러니까 이제 새로된 경종 동생을 쫓아내서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 우리쪽으로 만들어야되겠다 해서 정희량하고 이인좌라고 한 사람이 난을 일으킵니다. 그 난을 일으킨 이유가 뭐냐 이 궁녀신부에서 낳기 때문에 왕의 종자가 아닐수도 있다 하니까 다 모여든거여. 이제 그래서 서울까지 거의 쳐들어갈 기세가 되 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니까 그 영조가 평생 그 왕들도 외갓집이 시원치 못하면은 기가 죽는 것입니다. 죽는것인데 이제는 이분네가 이인좌 난 났다고하니까 이제는 의병을 모아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가기전에 난리가 끝나부니까 이걸로 끝나분 것입니다. 그 뒤에 이제는 심낙수라고 한 그 분네가 그 뒤에 제주목사가 되는데 의사로 왔다가 그 분네  격문 돌린 취지서 의병 이것을 봤어 그래가지고 거기에 뭐냐 우리 임금이 숙종 아들이고 경종의 동생이고 한데 그 어 헛말을 퍼뜨려가지고 이런 나 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해가지고 역사적으로 그런 예를 들어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영조가 얼마나 기분이 좋을 겁니까 근데 끝나가지고 18년 뒤에 그래도 이 어사가 아 이 벼슬도 안하고 과거도 떨어지고 한 선비가 참 이렇게 의병을 일으켰던 일이 이제는 있습니다 하니까 그 바로 충신으로 표창을 해라 한 것입니다. 근데 충신은 벼슬을 높여주지 표창을 한 덕이 없답니다. 그럴 수가 없답니다 하니까 그러면 의사라고 해서 정려를 해라. 열녀비석도 있고 효자비석도 있잖습니까 그거 그냥 비석 하나로 끝나는 거 아닙니다. 그 비석이 세워지면 조선왕조 끝날때까지 그 종손만은 세금면제 군인면제 그 혜택입니다 .그니까 대대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의사모를 세워줘가지고 그러고 또 이제는 이제는 사당을 따로 지어가지고 제사를 하게 하고 그기에 제사비용 할 그 땅을 법환이 앞에 있는 범섬을 준 겁니다. 그니께 자손들 일부가 거기 가서 살았다 해요. 그러다가 지금 이제는 창천리 그쪽으로 건너가서 이제는 그 이제는 살게 되는데 그 의병 일으키고 그런 것은 아니고 첫째는 그러해가지고 그 뒤에는 그 전에는 별시가 한두번만 있었다가 공식적으로 제주 과거는 별시가 돼서 긍께 과거를 하려고 하면 진사가 돼서 과거를 보는데 제주 과거명단 보시죠 진사면 진사안하고 과거 본사람은 전부 후기에 별시가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나는 의례 문화재일거라 했는데 문화재가 아니라고 하길래 그건 참 그거 참 이상하다. 아주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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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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