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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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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전설: 가시리 청주한씨 입도조 한천 한석동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이 서재공 호는 서재공입니다. 서재공 고려때 벼슬은 예문관대제학을 지내신 어른이십니다. 유배로 돼있습니다만은 홍순만 그 문화원장님은 유배가 아니고 유망이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유망이라는 말은 어느정도 자유가 있는 유배라도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그런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걸로 봅니다. 해서 제주에 와서 그 가시리 불모지에 와서 이제 그 마을을 설촌하고 그 이름조차 가시리라고 한 말을 붙였습니다. 그 뜻은 우리 할아버지가 제1인생을 개성에서 보냈다고 하면은 제2인생은 제주 가시리에서 제2인생을 살겠다하는 그런 뜻으로 더할가자 때시자 해서 가시리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여기와서 1392년도 7월달에 이 제주에 가시리를 설촌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제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제주에는 교육이 불모지였기 때문에 그 선비들은 배울려고 했어도 가르칠 그런 선생이 없어서 그런차에 우리 할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구름같이 주위에 있는 선비들이 모여서 서당을 맨들고 해서 이제 제주의 발전을 위해서 교육을 가르쳤다고 하는 그런 내용들이 실려있고, 그 후에 1300년도 참 930년도에는 그 제주도유헌, 또 전라도 유헌 그 서원들이 우리 할아버지인 위수해서 제주 사현사를 설립하려고 하는 그런 취지였던 그런적도 있습니다 .헌데 당시 일본사람들이 방해로 그 서원은 이뤄지질 못했습니다. 게 지금도 그 사현에 대한 그런 그 통문이라든가 이런 것은 모든 서적에 실려있고 뭐 언젠가는 서원이 아니래두 그 사현에 대한 그 흔적은 무언가 남겨야될거 아니냐 하는 우리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사현은 1392년 이후에 제주에 온 분들중에 유배온 분들중에 제일 그 고려때에 높은 벼슬 관직을 했던 분들을 얘기하는 건데 이제 청주 한씨 한천 서재공 할아버님은 위수해서, 김해김씨 김만희좌정승공, 경주 이씨 이미 교리, 그리고 또 한분 기간이 조금 늦었습니다마는 신천강씨 강녕 강사공, 이 네 분을 사현이라고 합니다. 

  앞에 모셔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양위는 한자천자 서재공 할아버지의 현손되는 할아버지들입니다. 마 현손이라면은 서재공 할아버지가 우리 한씨에서 11세인데 이 앞에 모신 할아버지는 15셉니다. 4대 후손되는거죠 세로 따지면 15세가 되는거고 대로면은 4대입니다. 근데 할아버진데 생년월일은 1441년입니다. 이 할아버지의 생년월일이. 그니까 이조초에 이제 모셔진 할아버진데 아마 우리들 보기에는 지금 평범한 묘소같지만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연구한 결과 이 산이 방묘로서 당시에 이조 초 전형적인 묘라고 해서 지금 제주도의 문화재로 지정이 돼있는 묘소입니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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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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