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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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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 탐라 토벌을 요청하다(공민왕 21년,1372년 4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원문>

壬寅 遣民部尙書張子溫如京師, 請討耽羅表曰, “海邦雖陋, 唯知事上之心, 島夷不恭, 敢阻朝天之路, 玆殫愚懇, 仰瀆聰聞. 伏念, 臣昧於爲國之方, 嘗有徑情之請, 謂致耽羅之安業, 莫如韃靼之移居. 尋奉詔書, 示以烹鮮之訓, 欽遵條約, 遂其按堵之生. 第貢獻之稽期, 非陳告之本意. 於本年三月, 差陪臣禮部尙書吳季南, 前往耽羅, 粧載馬匹, 赴京進獻, 以倭賊在海, 差弓兵四百二十五人防送. 不期韃靼牧子等, 將先差去秘書監劉景元及濟州牧使李用藏, 判官文瑞鳳, 權萬戶安邦彦等, 盡殺之, 及季南至, 又將弓兵先上岸者三百餘名, 亦皆殺之, 以此, 季南不能前進, 廻還. 如斯變故, 義當往訊其由, 未及奏陳, 禮無擅興之理, 祇增愧赧, 庸切籲呼. 伏望, 遠垂日月之明, 一視輿圖之廣, 明臣效忠之實, 愍臣抱屈之情, 俯頒德音, 爲之區處. 則臣之感戴, 粉骨何忘?”

 

<해제>

임인 민부상서(民部尙書) 장자온(張子溫)을 명의 경사(京師)에 파견하여 탐라 토벌을 청하였다. 그 표문에서 이르기를,

우리나라[海邦]는 비록 비루하지만 오직 큰 나라를 섬기는 마음은 알고 있으나, 섬의 오랑캐들이 불경하게도 감히 조회하러 가는 길을 막고 있으므로, 이에 간절함을 다해 알리려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어둡지만, 일찍부터 탐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달단(韃靼)의 이주만한 것이 없다고 아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서를 받아보니 생선을 굽는 것처럼[烹鮮] 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으므로, 조약(條約)을 삼가 준수하여 마침내 안정시켰습니다. 그런데 공물을 바치는 기일이 늦어진 것은 제 본의가 아닙니다. 올해 3월에 예부상서(禮部尙書) 오계남(吳季南)을 파견하면서 탐라에 먼저 가서 마필을 싣고 경사(京師)에 가서 바치게 했지만, 왜구가 바다에 있었으므로 궁병(弓兵) 425인을 파견하여 막도록 했습니다. 그러나뜻하지 않게 달단 목자(牧子) 등이 앞서 파견한 비서감(秘書監) 유경원(劉景元) 및 제주목사(濟州牧使) 이용장(李用藏), 판관(判官) 문서봉(文瑞鳳), 권만호(權萬戶) 안방언(安邦彦) 등을 모두 살해하였고, 오계남이 탐라에 도착했을 때에도 먼저 해안가에 도착한 자 300여 명을 궁병으로 모두 죽였습니다. 이 때문에 오계남은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이러한 변고와 같은 것은 마땅히 가서 그 연유를 아뢰어야 하나 미처 아뢰지 못했으나, 예에는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키는 이치도 없는 터라 다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간절히 호소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해와 달의 밝음을 멀리서 드리우고 천하의 드넓은 도량을 온전히 나타냄으로써, 명료한 신하의 충성스런 실제를 보고 가여운 신하의 움츠려진 마음을 살펴 명령[德音]을 내려 올바르게 처리한다면, 신의 고마운 마음이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어찌 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1. 기본 정보

​1) 사료명: 고려사

2) 세부 정보: 열전 권제43

3) 저자: 정인지 외

4) 일자: 공민왕 21년, 1372년 4월 25일(음)

 

2. 수집 정보

1) 수집 일자: 2014. 10. 31.

2) 수집 내용: 사업

3) 수집처: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링크 참조)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451
저자명
정인지 외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조회
44
Link
https://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43r_0020_0040_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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