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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황제가 탐라 반적의 소탕을 지시하다(공민왕 21년, 1372년 9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원문>

壬戌 張子溫·吳季南還. 帝賜王藥材, 親諭子溫等曰, “前年, 恁國家, 爲耽羅牧子的事進將表文來呵. 我尋思, 這耽羅的牧子, 係元朝達達人, 本是牧養爲業, 別不會做莊家. 有又兼積年, 生長耽羅, 樂土過活的人有. 更這廝每, 從前殺了恁國家差去的尹宰相麽道. 把這廝每遷將別處住去呵, 怕那廝不知國王的好意思, 疑惑着別生事端, 所以不准來. 今番這廝每又怎的如此作亂有? 我如今國王根底與將書去有, 恁到那裏, 國王根底備細說者. 休小覰他, 多多的起將軍馬, 盡行勦捕者! 我聽得恁那地面裏倭賊縱橫, 劫掠濱海, 人民避怕逃竄, 不能鎭遏. 致使本賊過海前來作耗的上頭, 我這裏戒飭沿海守禦官, 見獲到前賊船一十三隻有. 若耽羅牧子每, 與此等賊徒, 相合一處呵, 勦捕的較難有. 又聽得女直每在恁地面東北, 他每自古豪傑, 不是分守的人有, 恁去國王根底, 說着用心堤坊者. 又聽得恁國家疑惑大麽道. 自古天下有中國有外國, 高麗是海外之國, 自來與中國相通, 不失事大之禮, 守分的好有. 况今朝聘之禮不曾有闕, 有甚麽疑惑處? 昔日好謊的君王, 如隋煬帝者, 欲廣土地, 枉興兵革, 敎後世笑壞他, 我心裏最嫌有. 我這說的話, 恁去國王根底明白說到.”

 

<해제>

임인 장자온(張子溫오계남(吳季南) 등이 돌아왔다. 명 황제가 고려 국왕에게 약재를 내려주었고, 친히 장자온 등에게 일러 말하기를,

작년에 그대의 나라가 탐라 목자(牧子)의 일로 표문을 바친 적이 있다. 내가 깊이 생각해보니, 이 탐라 목자들은 원조(元朝)의 달달인(達達人)과 연계되어 본시 목양(牧養)을 업으로 삼고 별도로 농사를 지을 줄은 모른다. 또한 여러 해 동안 탐라에서 나고 자라 탐라 땅에 익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이들이 종전에 당신의 나라 윤재상(尹宰相)을 살해하여 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살게 하고자 하였으나, 이들이 국왕의 호의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일을 일이키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오게 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들이 또한 이처럼 난을 일으켰단 말인가? 내가 지금 국왕에게 글을 보내니 너희들도 고려에 가서 국왕에게 상세히 나의 말을 상세히 설명하라.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서 모두 죽이고 사로잡아라! 내가 듣기에 그대들 나라에서는 왜구들이 마음대로 연해를 약탈하여 인민들이 멀리 도피하려고 하는데도 진압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왜구가 바다를 건너 와서 소란을 일으키니 우리의 연해 수어관(守禦官)에게 명하여 적선 13척을 사로잡았다. 만약 탐라 목자가 이 도적과 함께 서로 합하여 한 곳에 있으면 죽이고 사로잡기 어려울 것이다.

또 듣기에 여진이 당신들의 동북쪽 지역에 자리하면서 예로부터 용맹은 빼어나지만 분수를 지키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너희들이 가서 국왕에게 신경 써서 방비하라고 전하라.

또한 들으니 당신의 국가는 의혹이 크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천하는 중국과 외국이 있고, 고려는 바다 밖의 나라로 스스로 와서 중국과 교통하면서 사대의 예를 잃지 않고 본분을 잘 지키고 있다. 하물며 조빙의 예를 일찍이 빠트린 적이 없는데 무슨 의혹이 있겠는가? 옛날에 수 양제(煬帝)와 같이 황망한 임금들이 영토를 넓히고자 병사를 무리하게 일으켜서 후세의 비웃음을 받고 말았으니, 내 마음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나의 말을 그대들은 국왕에게 가서 명명백백히 설명하라.”

라고 하였다.

 

1. 기본 정보

​1) 사료명: 고려사

2) 세부 정보: 열전 권제43

3) 저자: 정인지 외

4) 일자: 공민왕 21년, 1372년 9월 18일(음)

 

2. 수집 정보

1) 수집 일자: 2014. 10. 31.

2) 수집 내용: 사업

3) 수집처: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링크 참조)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451
저자명
정인지 외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조회
33
Link
https://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43r_0020_0090_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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