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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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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목사(濟州牧使)가 사복시에서 별도로 분정(分定)한 암말을 봉진(封進)한다고 급히 장계한 데 대해, 사복시 제조는 전관 목장(箭串牧場)에 특별히 신경을 써 살펴서 기어이 실효가 있게 하라고 하유(下諭)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 목사 유사모(柳師模)의 장계에, “암말 150필을 바치라는 사복시의 관문이 금년 3월 8일에 도착하였습니다. 즉시 봉진했어야 하지만 그때는 목장의 풀이 미처 무성하게 자라지 않았고 겨울을 지내느라 말들이 대부분 수척해 있었기 때문에 뱃길로 수송하여 먼 길을 끌고 가는 동안에 손상될 염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풀이 자라고 말들이 회복될 때를 조금 기다렸다가 금년 4월 3일에 3개 읍의 공둔(公屯)과 사둔(私屯)에서 기르는 암말 가운데 새끼를 배었거나 새끼를 데리고 있는 말을 제외하고 5살배기 이상부터 7, 8살배기까지의 암말을 모두 본영에 끌어오게 해서 한 필 한 필 가려서 뽑고 기준에 맞추어 크기를 잰 다음 오른쪽 뒷다리에 별(別) 자를 낙인(烙印)하여 수량대로 봉진하며, 둔명(屯名)과 제차(第次), 말의 나이, 털 색깔을 구분하여 성책(成册)을 갖추어 아룁니다. 사둔마(私屯馬)에 대해서는 모두 각자가 원하는 대로 국둔마(國屯馬) 중에서 추후에 선택하여 바꾸어 내줄 계획입니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21년 (1797)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3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21_05A_30A_0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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