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철학하기 試論 -로컬리티 담론과 제주학 연구 현황 검토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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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39호
오늘날 우리 학계에는 융복합과 로컬리티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담론들은 인간의 욕구와 현전성(現前性)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융복합과 로컬리티의 이상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로컬과 글로벌, ‘학적 지식(episteme)’과 융복합 사이에서 상호조화를 이루는 대대적(對待的) 관계가 아닌 상호대립적 관계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탐라문화(耽羅文化)에 실린 기획특집논문들을 살펴보았는데, 로컬리티 담론의 핵심인 다원성과 자기중심성이라는 이중원리에 충실한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38호가 발행된 탐라문화에 게재된 국내철학전공자의 논문은 전체 게재물 379편 가운데 8편으로 2.11%에 불과하다. 사실, ‘제주도의 문화에 관한 연구’를 대상으로 한다하더라도, 제주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거나 제주 출신 연구자들이 연구를 수행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큰 로컬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제주라는 작은 로컬을 대상으로 할 때,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로컬이 글로벌화할 수 있는 주요 주제가 일목요연하게 선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와 제주인은 2000년이라는 시간과 앞으로 얼마 동안일지 모르는 시간 속의 한 좌표인 ‘지금’과 한반도 서남단의 도서라는 공간과 한․중․일 중앙부에 위치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공간 속의 한 좌표인 ‘여기’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 좌표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중이지만, 언제나 ‘지금, 여기’인 좌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공간의 경계를 기반으로 한 구체성도,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보편성도 모두 ‘지금 여기’에서 성취될 수 있고, 성취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엄밀한 반성과 구체적 실천이 곧 제주에서 철학하기의 목표이자, 글로컬(Glocal)의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