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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계 신당(중문본향당 도람쥐궤당)

분야별정보 > 종교 > 무속



 

동벡자하로산-중문본향당신

서귀포시 중문동의 본향당신은 동벡자하로산이다. 이 신 역시 한라산 봉우리 서쪽 어깨에서 을축삼월(乙丑 三月) 열사흘날(十三日) 유시(酉時)에 솟아난, 아홉 형제의 신 중 다섯째이다.

이 신은 한라산을 떠나 차츰 차츰 내려오다가 중문동에 이르러 당신으로 좌정한 후 ‘진궁하늘 진궁부인’이란 신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두 부부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아들은 때때로 어린지라 어머니 젖가슴을 뜯고,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수염을 뽑고 가슴팍을 치곤했다. 이것이 부모의 눈에 거슬렸다.

두 부부는 아들의 행동을 나무라고 “불효의 자식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하고, 죽이려고 하다가 돌함 속에 아들을 넣어 자물쇠로 잠그고는 곧 바다로 띄워 버렸다.

돌함은 밀물에도 둥둥, 썰물에도 둥둥 떠돌아다니다가 동해 용왕국 대문 앞의 산호나무 가지에 걸렸다. 파도가 칠 때마다 쿵쿵하고 문을 치자, 동해 용왕국의 개가 쿵쿵 내달아 짖어대었다.

동해용왕이 이상히 생각하여 세 딸들에게 지시했다.

“큰딸아기 나가 보아라.”

“별만 송송하여 아무것도 없습니다.”

“둘째딸아기 나가 보아라.”

둘째딸은 나가 보고서,

“보이는 게 없습니다”

다음 셋째딸이 나가자,

“산호나무 윗가지에 어떤 돌함이 걸려 있습니다.”

“큰딸아기 내리워라.”

“한쪽 귀도 달싹 못하겠습니다.”

“둘째딸아기 내리워라.”

“한쪽 귀도 달싹 못하겠습니다.”

“막내딸아기 내리워라.”

막내딸은 꽃당혜 신은 발로 산호나무를 툭툭 차니 돌함이 저절로 설설 내려왔다.

“큰딸아기 열어 보아라.”

“둘째딸아기 열어 보아라.”

큰딸과 둘째딸은 돌함 뚜껑을 열어 낼 방법이 없었다.

“막내딸아기 열어 보아라.”

막내딸은 꽃당혜 신은 발로 돌함을 툭툭 차니 자물쇠가 저절로 설강 열려졌다. 돌함 속에는 샛별 같은 동자가 앉아 있었다.

“너는 귀신이냐? 생인이냐?”

“귀신이 이런 곳에 올 리가 있습니까. 저는 인간세상 사람으로, 아버지는 하로백관이고 어머니는 진궁하늘 진궁부인인데, 부모님 눈에 거슬리어 바다에 띄워 버리기에 여기 왔습니다.”

동해용왕은 천하명장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딸 방으로 들라.”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둘째딸 방으로 들라.”

역시 마찬가지다.

“막내딸 방으로 들라.”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서른여덟 이빨을 허우덩싹 열어 웃으며 들어간다. 곧 동해용왕의 막내딸 사위로 삼고, 용왕국에서는 사위손님을 대접하느라고 별별 음식을 차려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부인이 될 셋째딸은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조선국 장수님아, 음식이 좋지 못하여 잡수지 않는 겁니까?”

“ 너희들 용왕국은 대국이라면서도 우리 소국만도 못하구나.”

“조선국에서는 무엇을 잡수었습니까?”

“내 국은 소국이라도 밥도 장군, 술도 장군으로 먹었다.”

이 말을 들은 용왕은 “내 기세를 가지고 사위 손 하나 못 대접하겠느냐?” 하고, 그 날부터 풍악을 치면서, 술이니 안주니 대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석달 열흘 백일이 되어 가자, 동창고, 서창고가 다 비어 갔다. 용왕이 생각해 보니, 사위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용왕국이 망할 듯했다.

“여자라 한 것은 출가외인이니, 어서 남편 따라 나가거라.”

이들 부부는 뭍으로 올라와 부모님을 찾아갔다. 부모님은 자초지종을 듣고서, 일곱 살에 죽으라고 바다에 띄워버린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니 한편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며느리까지 맞이하게 되니 반갑기가 이를 데 없었다.

부모는 아들 부부를 맞아들이고 같이 살게 되었다. 시부모의 시중드는 생활은 한두 달이 좋지, 오래가면 괴로운 법이다. 동벡자하로산은 며느리가 불쌍히 생각되어 딴살림을 내 주기로 했다. 중문동에 ‘불목당’이라는 다른 당을 마련토록 하고 거기에 좌정하여 신앙민들의 제의를 받아먹도록 해 주었다.

이래서 중문동에는 <도람지궤>라는 본향당과 불목당인 두 개의 당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본풀이에 나타나는 상주표류담(箱舟漂流譚)의 화소는 신라의 ‘석탈해신화’나 가야의 ‘허왕후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또 송당신 백주또의 아들인 ‘궤눼깃당 신화’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용궁의 공주와 결혼하는 화소는 반농 반어업의 생활을 하였다는 어촌생활을 반영하는데, 이 때 요왕은 바다의 신, 그리고 요왕의 막내딸은 해전수호신(海田守護神)으로 이 둘의 만남은 어촌 마을의 형성과 반농, 반어의 어촌의 생산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 

문무병은 원래 한라산계 수렵신이 쫓김을 당하고, 해신계의 여신과 만나 어촌에 정착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이 여신은 ‘요왕국의 말젯딸’로, 뭍으로 올라오면서 7일에 제를 지내는 ‘일뤠할망’계열로 바뀌어서 그 여신의 직능도 해안마을에서는 해전수호신(海田守護神), 피부병신(皮膚病神), 산간이나 중산간 마을에서는 농경(農耕), 산육(産育), 치병(治病)신으로 바뀐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종교 > 무속
생산연도
2020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6
첨부파일
중문본향당 도람쥐궤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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