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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제주도 개신교 형성사 -이기풍 선교사 이전 현지인 신앙공동체를 중심으로-

분야별정보 > 종교 > 기타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제주도 기독교의 역사가 1908년 이기풍 목사의 선교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주도는 이기풍 목사가 도착하기 전인 1899년 이미 천주교의 공식적인 선교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더구나 그 시기에 제주도에는 개신교 현지인 신앙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장로교회는 신앙공동체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이 공동체는 1904년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한국장로교회는 이기풍 목사를 그 섬에 보냈으며, 그는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선교활동을 펼쳤다. 기록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회의 선교 이전, 제주도에는 두 신앙공동체가 있었다. “이호리 신앙공동체”는 김재원의 전도에 의해 1904년에 시작되었다. 이 공동체는 선교사를 제주도로 보내달라고 한국장로교회에 요청했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선교사업의 베이스캠프가 되었으며 제주도에서 여러 교회들이 설립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조봉호에 의해 1907년에 설립된 두 번째 “금성리 신앙공동체”는 제주도를 위한 근대화 및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의 신앙을 애국하는 마음으로 연결시켰다. 이들 공동체를 통해 제주도 기독교 역사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현지인들이 예배모임을 가졌고 그들이 선교사를 요청했으며, 그로 인해 제주도 교회들이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초기에 교회들이 형성되는 맥락과 동일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개신교 신앙공동체들이 천주교의 선교활동이 진행 중일 때 시작되었는데, 사실상,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지도자들은 제주도의 근대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으며, 개신교를 통해 현지인들이 품고 있었던 종교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김재원에 대한 구전과 신앙공동체에 대한 존재가 끊임없이 학계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 관련 학계에서는 이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에비슨 선교사의 회고록 Memories of Life in Korea에 김재원에 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회고록의 내용은 김재원에 관한 구전과 거의 일치했다. 에비슨의 회고록이 제주도 신앙공동체의 시작과 성장을 재구성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 셈이다. 이 두 신앙공동체는 1908년에 합류되었다. 그 결과, 초기 제주도 교회의 모습이 형성되었다. 즉 이기풍 목사의 선교활동과 함께, 초기 제주도 개신교의 두 개의 흐름이 하나로 합류되었던 것이다. 이 공동체들의 특성은 한편으로 ‘질병의 치유를 통한 선교’와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를 향한 선교’였다. 여기에는 현지인들과 이기풍 목사의 좋은 협력이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장로교회의 초기 제주도 선교는 두 공동체들의 합류를 통해서 현지인들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했다고 하겠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종교 > 기타
생산연도
2013
저자명
박정환
소장처
KCI
조회
35
첨부파일
초기 제주도 개신교 형성사 이기풍 선교사 이전 현지인 신앙공동체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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