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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산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사 파송

분야별정보 > 종교 > 기타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07년 9월 17일에 한국 교회의 제1회 독노회가 조직되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제주로 이기풍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12년 9월 1일에 제1회 총회가 설립되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그런 다음 1913년 제2회 총회에서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세 사람이 선교사로 선정되었고, 이들은 9월 하순경 그 식구들과 함께 그들의 선교지로 떠나게 된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최초의 공식적인 해외선교의 시작이었다. 제1회 독노회가 설립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목사를 안수할 수 있는 치리회인 노회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목사가 있어야 명실상부하게 한국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국 교회는 노회 설립을 기념하여 이기풍을 제주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자립 선언이었다. 제주 선교는 노회를 설립하게 된 기쁨의 표시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헌물이었다. 이기풍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헌물과 같았다. 전(全) 한국 교회가 이기풍 선교사와 이기풍과 함께 떠나는 전도인들 한 두 명의 후원을 감당하게 된다. 제주 선교를 위해서 각 교회들이 헌금한 일은 한국 교회가 충분히 자립하였다는 확증이었다. 한국 교회는 제주 선교를 통해서 진정으로 자립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이 정신은 곧 5년 뒤에 제1회 총회가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는 데에 동기가 되었다. 중국 산동 선교는 1912년 제1회 총회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07년에 제1회 독노회가 조직되고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한국 교회가 제1회 총회를 설립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 교회가 그만큼 진전(進展)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제1회 독노회를 설립하고 난 다음 5년 내에 양적으로 질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는 영적으로도 은혜롭게 성장하고 성숙해져갔다. 그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는 이전보다 더욱 자립하는 교회로 성장해갔다. 산동 선교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제1회 독노회 시절보다도 더욱 자립하였다는 선언인 것이다. 1912년 한국 교회는 제1회 총회를 설립하면서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산동선교는 총회 창립을 기념하고, 또 축하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다. 한국 교회는 중국에 복음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선교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영적인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중국 산동으로 세 가정을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별히 산동으로 파송되는 선교사 세 사람은 그 당시 한국 교회 내에서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한국 교회의 헌물과 같았다. 또 한국 교회는 이들을 통해서 중국과 만방에 한국 교회의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종교 > 기타
생산연도
2015
저자명
민경운
소장처
장로회신학대학교 도서관
조회
38
첨부파일
제주와 산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사 파송.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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