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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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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부암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康士喆의 아내 烈婦 高氏의 절개를 후세에 기리기 위한 것이다. 고종 4년(1867)에 판관 신재우가 고씨의 행적을 조정에 알리고 그 바위를 ‘절부암’이라 하여 마을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지금도 자연 암벽에는 절부암이라 새겨져 있고, 그 바로 위에는 監 金膺河書 洞首李八根刻, 뒷면에는 同治 丁卯 年記 字平三, 그 맞은편 암벽에는 判官愼佑撰이라 음각되어 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5
저자명
제주특별자치도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1
첨부파일
2 절부암 전경 (2015. 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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