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康士喆의 아내 烈婦 高氏의 절개를 후세에 기리기 위한 것이다. 고종 4년(1867)에 판관 신재우가 고씨의 행적을 조정에 알리고 그 바위를 ‘절부암’이라 하여 마을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지금도 자연 암벽에는 절부암이라 새겨져 있고, 그 바로 위에는 監 金膺河書 洞首李八根刻, 뒷면에는 同治 丁卯 年記 字平三, 그 맞은편 암벽에는 判官愼佑撰이라 음각되어 있다.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