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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공 고조기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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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공 고조기(高兆基) 묘비문

 

무릇 길게 흐르는 냇물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솟는 샘이 있고 또 여기 꽃과 잎새 무성한 나무 등걸을 또 파내려가면 깊은 뿌리가 있는 법이다.

사람도 이와 같이 조상은 자손을 낳고 기르고 자손은 피의 근원을 찾아 조상을 섬기나니 이것이 어찌 저 강물의 샘과 나무의 뿌리에만 비길 것이랴.

남해의 파도를 넘어 구름밖에 아득한 제주 땅에 발을 딛으면 耽羅國을 처음 세우신 高乙那王의 탄강지라 전해오는 거룩한 유적지 三姓穴이 있고,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1km쯤 되는 곳에 굉걸한 무덤이 있으니 이는 시조 高乙那王의 48세손이요, 高氏의 조상이신 文敬公 兆基의 묘소다.

그러나 자손들은 묘비의 갖추지 못함을 민망히 여겨 마침내 내게 글을 청하므로 나는 근원을 찾는 갸륵한 뜻에 감격하여 삼가 그 사적을 상고하니 시조의 15세손 厚王은 신라로부터 星主의 칭호를 받았고, 45세손 自堅王은 태자 末老를 고려에 보내어 太祖에게서 상과 작위를 받았으며, 그 뒤에 이 땅이 고려와 합치게 되면서 始祖王 이래 대대로 계승해 오던 王位가 그로써 끝나고 末老로부터 새로 헤아려 高氏의 중시조 1세를 삼고 그의 아들 維가 처음으로 고려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右僕射에까지 오르니 이가 바로 公의 부친이라 公은 실로 제3세가 되는 분이다.

 

(高氏宗門會總本部, 『耽羅星主』, 2016년, p.132)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3
첨부파일
문경공고조기묘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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