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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변씨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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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郎將 原川邉公변세청(邊世淸) (충숙왕3년 1334~ )지석

 

濟州老衡咸 朴洞丙 坐原雙墓는 中郎將 邉公 諱 世淸 및 淑夫人 高氏之墓라 府君은中華瀋陽 名 閥之孫이니 高祖 諱 順 曾祖 諱 諒은 倂元朝瀋陽侯요. 祖 諱 安烈 號 大隐公은 行元祖 刑部尙書하고 入仕 高麗하여 出將入相하고 內擾外乱에 無往不捷하여 豊功盛蹟이 冠于諸宰하니 王室有恃요 朝望甚隆이라 歷三韓三重大匡門下賛成事領三司事하고 封原川府院君하니 即 原州 邉氏 之 始祖也라. 大隐公은 麗朝重臣으로 忠節을 지켜 李侍中의 高麗 顚覆陰謀를 阻止하려다가 被禍殉節하나 漂漂秋霜은 公之 忠烈이요 烈烈白日은 公之 義節이라 此夜 痛哭을 何日 敢忘가 物薄情厚하니 靈遮來甞이라는 祭文과 自古로 有國之未에 天必生忠臣烈士하여 或 竭力 禦寇하고 或盡節殉國하여 迄萬世토록 爲人臣準極者不無其人이로되 一人之身이 兼 是二者는 求之古今에 如邊安烈者鮮矣로다. 寃乎痛哉라 天下後世에 孰知其豊功偉烈苦忠危節乎아 子悲其寃而感其忠하여 不忍使湮沒於後하고 遂作傳以竣後世大公心正論也라는 大隱傳을 鄭圃隱이 著逑하였으며 李牧隱著大隱行狀 및 吉治隱著大隱遺書와 東史彚纂 麗史는 天貫日之忠節이 比於圃隱而殆無讓焉이라하여 萬古忠臣으로 推仰하고 있다. 祖妣는 原州元氏 判樞密院事 諱 顗之女요 考는 上護軍 判訓鋉院事 諱 預요 妣는 安東金氏 知 甫州事 諱 寶憐之女라 府君은 行中郎將하고 入居濟州하여 通訓大夫 州學敎授로 餘生을 보내니 卽我 邊氏之中 始祖요 配는 淑夫人 耽羅高氏니 星州世家 都知管 諱 銀漢之女라 生 四男一女하니 男은 諱 士英 士俊 士仁 士雄이요 女는 高以禮요 孫會以下는 煩多不記라 顕官에 九代孫 文科 戶曹參判 是重과 十代孫 文科 成均舘 直講 聖遇 文科 承文院 注書 聖運 武科 司憲府 監察 聖輔와 十一代孫 文科 兵曺參判景祐 文科 萬頉縣令景鹏 文科 承政院 注書景後 等 文武科 甲이 連代 輦出하여 以振家聲하니 耽羅 五百年史에 甲於一州로 能稱名閥이라 嗚呼 祖宗 積慶이 己過半千餘載에 振振 子孫이 充溢 區宇하고 世有 名碩하여 或文 或武로 科甲 不絶하니 源遠而 流長하고 根深而 技茂로다. 噫라 世代 久遠하여 幽堂 毁損이러니 後孫 東奎喜捨私財하고 殫誠 竭力하여 改碣立石而 以圖久遠하고 畢改封加土築墻之役하니 其追遠報本之誠이 波及於 衆孫이로다. 振作 孝悌敦睦之風하여 以待後裔之觀 感也라.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중랑장군원주변씨지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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