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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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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소장 안봉려관 스님 근영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안봉려관

- 안봉려관 여스님은 1865년 6월 14일 제주시 화북리에서 순흥안씨 치복과 평산 신씨 사이에서 출생

1902년 불문에 귀의한 후 고행 걸식하며 비양도 및 촌락을 돌아다니며 중생을 인도하기 시작하였으며, 관음사 경내 해월굴에서 6여년동안 정진하여 스스로 통하게 되고 환자를 초약으로 고치는 등 많은 기적적인 일을 일으킴

-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원을 세워 대흥사로 건너가 문둥병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스님을 묵은 된장과 재로 완쾌시켰으며, 1907년 12월 8일 3인을 계사로 하여 성대한 수계식이 열려 ‘봉려관’이라는 법명으로 비구니계를 받음

- 1908년 1월 5일 제주로 돌아온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제주성내 포교사로 취임함과 동시에 관음사 창건을 시작으로 법정사, 불탑사, 월령사, 법화사, 포교당 등 창건 및 중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전하기 위해 진력을 다함

- 스님은 민족정신이 투철하여 관음사와 산천단 포교당을 근거지로 항일운동을 벌이려고 했으나, 일경들의 경계가 삼엄해서 김연일 스님을 법정사 주지로 추대했으며, 전국 및 일본 대판까지 건너가 시주금을 모아 거액을 주고 금종을 사와 독립운동 자금으로도 썼다고 함

- 열반하기 전 이곳 관음사 부지 5만평 부지를 법원등기를 완료하였으며, 관음사를 현대식 사찰로 재건하기 위하여 법선스님을 데리고 담양으로 올라가 성혜스님의 부친인 국채옹 참봉을 만나 관음사 재건에 도움을 청하고 그 인연으로 관음사를 크게 재건 중창하기도 했음.

- 1938년 5月 열반에 들어 세수 74세 법납 32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함.

- 다비식 날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다 회오리를 쳤는데, 1940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돼 다시 재건되었으나, 4.3 사건 당시 다시 소실되는 비운을 맞음.

 

제주시 도남동 보덕사(제주시 독짓골 8길 26) 대한불교조계종 관음사 말사 보덕사 주지 혜전(慧典)스님 소장 자료)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2
첨부파일
안봉려관 스님 근영(보덕사 소장)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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