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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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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계 이한우 유적비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스승

 

충효의 본보기 매개 (梅溪) 이한우 (李漢雨) 선생

 

선생은 조선조 후기의 선비로서 본관은 전주이며 1823년 신촌리에서 이신구( 李信九)의 아들로 태어나 호를 매계라고 하였다. 시문에도 능하여 당시 제 1인자라고 하였다. 제자로는 소백 안달삼 (安達三), 해은 김의정(金義正) 이락 이계징, 석호 고영흔 등 유명한 문사들을 배출시켰다. 제주목사를 지낸 목인배와 추사 김정희와도 어울려 글을 논하였고, 1862년 강제검, 김흥채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듬해 의병을 창도하는 격문을 지어 충의의 뜻을 유림에게 돌렸다. 또 어버이에 대한 효행과 형제에 대한 우애는 널리 알려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상을 마쳐 제삿날에 “ 오늘은 아버님을 모시고 돌아가겠노라”고 말을 남겨 숨을 거두니 이 때가 1881년 정월 23일 나이는 59세였다.그가 지은 매계문집이 오늘에 전해지며 그의 행장은 부해 안병택(安秉宅)이 지었다. 1939년에 이르러 신촌마을 선비들이 수암 강용범(康用範)의 글을 담은 공적비를 이 자리에 건립하니 선생을 조명하게 되었고, 1998년 에는 신촌리 출신 김영길 교사에 의해 매계문집 번역본을 세상에 펼치니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아동 교육을 위해 교장의 요청으로, 김찬흡이 고증하여 적었다.

서기 1999년 1월 23일

신촌초등학교 교장 양행남 세움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47
첨부파일
IMG_136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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