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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락당(이계징) 묘역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이계징(李啓徵)(1840, 헌종 ~1914)   

공의 성(性)은 이씨(李氏)이고 이름은 계징(啓徵)이며, 자(字)는 경운 (慶運)이며 본(本)은 고부인(古阜人)이고 호는 이락당(二樂堂)임  

- 이계징은 함덕에서 훈학하여 마을에도 큰 영향을 남기고, 이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을 익히고 신봉하여, 전국적으로도 성리학자로 추앙된 바 있어 신임 목사나 판관이 도임할 때마다 강론을 받음

❍ 부친이 병든 수년 동안 약물과 섭생에 힘을 다하였고, 돌아가시자 성실히 예를 준수하여 장례를 마친 후 묘옆에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르자 백부는 때로 와서 옷이 남루하면 이잡기를 청하면서 자주 새 옷 갈아입기를 청함

초제탄(招弟灘)은 그의 아우인 이후징(李厚徵)이 고기잡이 갔다가 태풍을 만나 사고를 당하자, 같은 배에서 10명이 죽으니 동서로 바닷가를 수색하여 시체를 찾아 다니자 물 위로 올라왔다고 함

- 그는 동생의 시체를 마주 들어서 집에 돌아와 사흘 밤을 시신과 함께한 후 염습하여 묻음

❍ 공의 묘는 교래리 조인납(助人納) 지경에 있고, 그의 제자들은 선생의 사적을 새겨서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하도록 함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6
첨부파일
이락당묘와 묘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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