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 태권도 경기 변천과정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문화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 연구는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태권도 경기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제주태권도의 문화정체성 확립 및 사(史)적 체계를 정립하여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태권도는 각 지역이 갖는 문화적 특수성과 융화되어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기도하며,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특정 지역인 제주를 중심으로 태권도 경기 변천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제주 태권도 경기의 변천과정에 관련된 문헌 및 신문기사 등의 문헌자료를 참고하였다. 연구의 질적 향상과 문헌의 사실적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초창기 태권도를 수련하고 보급하였던 원로, 임원 그리고 선수들의 구술 자료를 모아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되도록 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 지역의 태권도 도입은 1954년 6월 문대식(文大植․본명 문봉준)에 의해 사사로 이루어졌다. 초창기 태권도 보급은 1955년 6월부터 창무관, 강덕원, 청도관, 오도관, 지도관 그리고 송무관 등의 주요 6개 관(館)에 의해 보급되어 졌다. 창무관이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제주태권도 보급에 많은 영향을 가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제주도태권도협회는 1957년 7월 17일 결성되었다. 1963년 2월 10일 제주도체육회 가맹경기단체로의 승인을 시작으로 역대 3번의 전국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재일동포의 성금으로 제주도태권도회관건립, 제15회 세계선수권대회 유치, 제주평화기전국대회 유치 및 상시개최 그리고 ‘제주태권도 50년사’ 편찬 등의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셋째, 제주선수단은 1982년 첫 국가대표 장승화를 시작으로 다수의 국가대표선수를 배출하였다. 전국체육대회에서도 두 번의 종합 준우승과 한 번의 종합 우승을 기록하며 그 경기력을 입증 시켰다. 초창기 지도자들의 희생과 선배들의 귀감, 전국 창무관 수련회 및 심판강습회 제주유치, 전국체육대회를 대비한 강화훈련과 유망주 집중육성 그리고 제주대학교 태권도부와 제주도청 태권도팀 창단 등의 노력이 뒷받침된 결실이라 하겠다. 이는 결과적으로 도내 태권도 저변확대에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제주태권도가 제주체육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넷째, 제주선수단육성은 60년대 초반 시작되었다. 제주시지역은 오현고등학교에서 남녕고등학교와 영주고등학교로 이어졌고 서귀포지역은 남주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계육성의 시초로 1972년 제주사범대학교에 태권도부가 창단되었다. 중학교 태권도부는 2000년대를 전후로 제주에서 열린 제32회 소년체육대회대비를 목적으로 잇달아 창단하여 육성되고 있다. 다섯째, 제주태권도는 지역적 특수성을 극복하고 비약적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표상적인 실적에만 치중하는 경향으로 인해 제주도태권도협회의 내실 약화와 선수층 고갈 그리고 선수육성에 대한 많은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사회과학 > 문화
생산연도
2015
저자명
송문철
소장처
한국체육대학교 도서관
조회
12
첨부파일
제주 태권도 경기 변천과정.pdf

이 자료의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사용 시 원저작권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