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이야기 유산 아카이브 - 곡성 현감 문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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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읍 명월리 곡성현감 문영후 묘 입구
애월읍 어음리 '변방우영'에서 문재박의 아들로 태어남. 현종7년(1666) 식년문과 전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전라도 남원의 오수찰방을 지내고 곡성현감을 지냄.
그래서 그를 문곡성이라고 불렀는데, 용모가 무골형으로 풍채가 우뚝하고 힘도 센 장사였다. 중국의 태자가 병이들어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낫지 않아 , 남방인 문곡성이 천거되어 중국으로 불려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점괘를 의뢰 받았는데, "자참부두하니 백설분분" 이라는 점괘였다. 그는 이를 " 위패를 톱으로 잘라서 나무 톱가루가 흩날렸다" 라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선대 조상의 위패 앞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자 태자의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국지리인 소두산 목사가 제주목사일 때, 그의 선친의 묘를 탐색한 후, 이 땅은 호형인데,"호랑이의 눈쎂 위에 묻었는데, 아래로 묻었으면" 하자 그렇게 했는데,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