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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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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이야기 유산 아카이브 - 조천읍 조천리 김시우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민속



조천읍 조천리 금대측면 

 동네 길 좌측으로 작은 언덕배기 하나 있는데, 그 형세가 마치 비파와 같이 생겨 금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산자락 아래에는 서재가 있는데, 바로 우리 만취 선생께서 사셨던 집이다. 선생은 매번 관을 쓴 성인 남자 대여섯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과 더불어 소리를 길게 뽑아 시를 읖조리곤 했다. 이산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모두 훌륭한 시의 소재가 되었다. 선생이 돌아가시자 산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몇번 거느리곤 하다가 서로 잊혀져가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급기야 문하의 여러 제생들이 선생이 사시던 옛터가 묵어감을 두려워 한 까닭에 선생의 큰아들 윤환과 더불어 돌을 갈고 대를 쌓기를 도모해 이름 짓기를 금대라 명한다. "선생이 살아계실 적에 산이 높아 커 보이더니 선생이 돌아가시자 산이 적막해져 버렸네, 돌은 닳아 없어지지 않고, 대는 우뚝 솟았으니, 우러러 볼 수록 그 비명 더욱 뚜렷하기만 하구나.

공자 탄생 2,476(서기 1925)년 을축년 저무는 봄에 세우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민속
생산연도
2018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비석 측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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