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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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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이야기 유산 아카이브 - 성산읍 삼달리 강성익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민속



성산읍 삼달리 강성익 사적

 정조 18년(1794) 갑인년에는 제주애 극심한 흉년이 들었는데, 도민은 기아에 허덕이고, 각 목마장의 국마 3천여필을 징수하라고 하자, 당시 도내 마필수가 1500여필에 불과하여 도난 당하거나 아사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오던 길에 도민들이 어려워 애원하는 사실을 듣고, 없어진 국마 1500여필을 변상할 능력이 없다고 국왕께 상소하여, 정조는 특명으로 마필 징발을 중지하고 구호 양곡을 내려보냈다.

 1814년 제주찰리겸 위유어사 이재수가 내도하여 부모를 섬기고 도리를 다하고 강단을 지어 후진을 계도하는 것을 목격하고 상계하니 다시 관직에 재등용 되었다. 그는 순조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정결한 곳에 헌수단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북향배례하고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사회과학 > 민속
생산연도
2018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강성익 사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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