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민속
의사 오흥태 정려비문
영조 4년(1728)에 이인좌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켜서, 전국이 어수선해지자, 유생 오흥태는 삼읍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는 창의 격문을 정의현 중심으로 삼읍에 돌리고 의병 수백인을 모아서 군량과 무기를 마련하여 출륙하려 할 즈음에 태풍이 몰아쳐 순풍을 기다리다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륙을 중단하고 이내 곧 군사를 해산하여 돌려보냈다. 이 이후 주변에서는 오흥태를 오의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