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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역의 아나키스트운동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사회



제주도연구 제47권

  제주도에서의 아나키즘 수용은 고순흠, 고병희 등 서울이나 일본으로 유학갔다 돌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활동에 힘입어 1925년 무렵 제주도에는 아나키스트가 65명이나 되었다.

  제주도 아나키스트들 역시 반제국주의와 반공산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반민족주의적 입장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주 지역에서는 육지와 달리 아나코생디칼리슴이 일찍부터 수용되어 아나코코뮤니즘과 함께 아나키스트계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제주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운동은 생산자조합이 아닌 소비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강기찬, 고영희, 조대수, 김형수 등은 비밀결사 '문고'를 결성한 뒤, 때때로 회합을 가지면서 아나키즘을 연구하였다. 1927년 10월에는 소비조합을 결성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다. 고병희와 조대수는 소비조합을 통해 그 지방의 생산기관과 교통기관을 장악하기로 하고,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방도로서 우리계를 결성하였다. 우리계에는 거의 모든 분야와 지역의 인사들이 총망라되었다. 우리계는 1929년 9월 각 동리에 야학을 개설하여 교육운동을 펼치는 한편, 자주운항운동에 동참하였다. 

  우리계 관계자들은 기업동맹 기선부와 합작하여 제주도-오사카 항로 경영에 나섰다. 이들은 제주도-오사카 항로를 제주도민 전체의 직영으로 경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자주운항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아나키즘을 선전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제주도 출신 아나키스트들은 오사카에 거주하는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아나키즘 선전작업과 조직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신진회 등을 중심으로 반민족단체 상애회와 조선인협회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사회과학 > 사회
생산연도
2017
저자명
이호룡
소장처
제주학회
조회
29
첨부파일
제주도 지역의 아나키스트운동_이호룡.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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