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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화교의 제주도 정착과정과 사회적 위상

분야별정보 > 사회과학 > 사회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 연구에서는 100여년가까이 함께 살아온 제주 지역의 소수민족인 화교에 대하여 그들의 제주도 정착과정과 사회적 위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적 시각에서 검토했다. 그 동안 제주도에 정착한 화교들은 오랜 정착역사에도 불구하고 화교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 화교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화교의 존재에 대해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100여년 가까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화교들은 이제 제주지역 사회의 일부이다. 그들은 대부분 계속 제주도에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화교를 더 이상 외국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제주도의 도민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다문화(多文化) 시대라는 흐름 속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라고 여겨진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제주도 화교의 정착과정과 사회적 위상을 논하기 앞서 전체적인 1880~1950년대 한국 화교의 역사와 정착과정을 선행연구를 통하여 알아보았다. 한국 전체적인 화교의 이주와 역사적 배경의 검토는 제주도 화교의 정착 과정을 살펴보는데 배경이 되었다. 제주도 화교의 정착 시기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었다. 1920년대 제주도에 경제적 이유로 입도한 화교들에서 시작하여 1950년 8월 양낙산 일가의 피난선 해상호 입도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주도에 처음 입도 한 화교에 대한 자료는 불명확하지만 제주도 화교의 자손들의 구술자료를 통한 자료 수집결과와 현재 제주화교소학교에 걸려있는 1951년 화교소학교설립 당시 내력에도 ‘우리화교 교포가 제주에 온지도 30여년이 지났다.’ 라는 기록으로도 확인가능한 입도시기를 1920년대로 추정 할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1920~1950년 제주에 정착한 화교들이 제주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화교소학교설립과 경제활동을 돌아보았다. 또한 그들이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한계가 되었던 한국사회에서 제주사회에 이르기까지 화교와 관련된 법령 및 정책도 살펴보았다. 1920년대 일제시대의 제주도 화교사회는 화교소학교의 필요가 대두 되지 못하였다. 이는 남자 위주의 경제이민이 주가 되던 화교사회에서 화교 2세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아직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 8월 대규모 피난선 입도 이후 양낙산 일가를 주축으로 화교 2세대들의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인식되었다. 한국전쟁이후 중국대사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국에 화교소학교가 증설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1951년 본격적으로 모금운동을 하게 되었고 제주도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서울·인천·부산·목포 등 타 지역의 성금까지 동참하게 되었다. 제주화교소학교는 중국인 특유의 중화사상과 민족적 자부심을 알리고 화교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하며 화교의 정체성을 지키게 하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사회과학 > 사회
생산연도
2009
저자명
문미라
소장처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조회
30
첨부파일
근현대 화교의 제주도 정착과정과 사회적 위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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