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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紀 濟州道 民家의 變容과 建築的 特性에 관한 硏究

분야별정보 > 기술과학 > 건축



명지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학위 논문

韓國의 民家 계통중에서 濟州島 民家는 특이한 형성배경을 가지고 형성되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제주도 민가의 고유성을 밝히는 작업이다.19세기의 韓國사회는 民家들에 변화를 가져올 많은 요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前 世紀에서부터 이어진 상업경제의 발달과 농업기술의 발전에서 유발된 신분제도의 변동과 王權 弱化, 三政의 문란으로 봉건사회 발기적 현상을 나타낸다. 여기에 새로운 이념인 實學思想이 擡頭되었으며 이러한 시대 상황에 따라 한국의 민가에는 전반적 변화가 나타났다.濟州島에서는 200년 以來의 '出陸抑制政策'이 이 시기에 해제되어 변용 요인으로 추가된다.본 연구는 이 전환기의 濟州島 民家의 變容形相에서 내재된 이념을 밝하고 변화의 성격을 파악한다. 공간 구성상의 변용형상에 주된 관심을 둔다는 관점을 설정하고 변용현상의 운동법칙성을 발견하고자 했다.연구는 아래의 과정에 따라 전개되었다.1章. 序論2章. 濟州島 民家의 形成背景에서 민가의 배경이 되는 문화요소를 고찰하고3章. 濟州島 民家에서 원 제주 민가의 성격을 파악하고 주변지역 민가를 살펴보았다.4章. 19世紀 濟州島 民家와 시대적 상황과의 관계를 고찰하고 사례를 분석하였다.5章. 19世紀 濟州島 民家의 變容에서 형상과 원인을 살피고 이념을 규명하여6章. 結論에 도달한다.이 때 제주사회에는 토착지배 엘리트 계층이 형성되고, 독점상권을 가진 제주 상인들의 이윤축적으로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던 제주 민가에는 중앙의 정치적 혼란으로 行刑制인 流配가 빈번해지면서 많은 流配客들의 來島가 학문과 사상 성숙의 기회로 작용하였다. 특히 金尙憲, 宋時烈, 鄭蘊 등 유학자와 秋史 金正喜의 "實事求是" 이념이 19세기 제주 사상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이 연구의 성과인 19세기 제주도 민가의 변용내용과 그 성격은 다음과 같다.1. 한국의 전통적 마을의 공간체계는 폐쇄적인 성격인 반면 濟州島의 마을은 개방적인 공간체계를 가겼다. 이 개방적인 공간개념은 民家의 공간구성에도 적용되었다. 곧 민가에서 별동 배치된 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물들 사이로 외부공간이 확산되는 것과 마을에서 공공시설을 핵으로 해서 방사선형 도로체계를 갖는 것은 같은 개념이다.2. 19세기 제주도 민가에 나타난 근본적 변화는 밖거리에 「머리방」 혹은 「머리마루」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待客과 학습 전용의 남성 영역, 즉 □廊이 先시대 제주민가에 전이되는 현상이다. 19세기 제주 민가의 성격은 「머리방」이 결정하였다.3. 공간체계 상의 변용 형상은 성리학적 예법에 따르는 내외관념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구조와 공법 상의 변화는 實學的 建築理論이 적용된 형상이 그 내용이 된다.4. 별동 정지형식의 이념적 배경은 古法을 理想으로 인식했던 조선시대 儒家의 성격에 따라 선택된 형식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기술과학 > 건축
생산연도
1997
저자명
김석윤
소장처
국민대학교 성곡도서관
조회
34
첨부파일
19世紀 濟州道 民家의 變容과 建築的 特性에 관한 硏究.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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