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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 무레꾼 전통의 변화와 지속

분야별정보 > 기술과학 > 수산업



실천민속학연구 제25호

본고에서는 서남해지역 무레꾼의 과거 모습을 추적하고, 제주해녀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적응해 온 과정을 주목하였다. 그리고 마을어장에서 무레꾼과 일반 주민들의 관계를 주목하여 현재의 위상에 대해 논의하였다. 서남해 지역에서는 잠수를 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무레꾼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무레질을 하여 ‘무레꾼’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었으나, 제주해녀들이 들어오고 차츰 여성들만 무레질을 하게 되면서 ‘해녀’와 ‘잠수’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제주도 출신이면서 바닷일을 전문으로 하는 포작과 포녀에 대한 언급이 많다. 이들은 배를 타고 유랑하듯이 서남해의 섬과 해안을 떠돌아다닌 것으로 파악되는데, 큰 틀에서 지금의 무레꾼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서남해 무레꾼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으로는 1791년에 기록된 <금당도선유기>를 통해 완도의 평일도무레꾼들이 전복 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남해지역 무레꾼 전통에서 특징적인 점은 남자무레꾼의 존재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서남해 일대에서 남자무레꾼이 존재했고 그들이 여자들과 함께 무레질을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남자무레꾼의 활동은 40~50여 년 전에 중단되면서 파편화된 기억으로 전해지지만,서남해 곳곳에서 남자무레꾼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서남해의 주민들은 물과 친숙하여 어려서부터 수영을 하면서 놀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의노력을 통해 물속의 무레미역을 채취할 정도의 잠수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무레질을 하는것과 전문적인 무레꾼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서남해지역에는 전문적인 무레꾼이 필요한 사회가 아니었고, 무레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이거나 전문적인 무레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에 제주해녀들이 들어오고, 그들과 접촉하면서 전문적인 무레꾼들이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 제주해녀들이 고무옷을 입고 등장하면서부터 남자무레꾼들은 자연스레 활동을 중단하였고, 여자무레꾼들은 소수화 되어 좀 더 전문화된 직업으로 변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전남 도서지역의 무레꾼들은 마을어장에서 자연산 해산물을 채취하는 소수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어장은 무레꾼과 마을주민이 공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둘사이에는 미묘한 갈등관계가 존재한다. 해조류의 경우 대부분 마을주민들이 공동채취 및 분배를 하고, 수중의 해산물은 마을에서 해녀사업자에게 빈매를 한다. 제주도의 경우 해녀들이마을어장 전반을 관리하고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서 어로활동을 전담하는데, 서남해에서는 마을에 무레꾼들이 있더라도 빈매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일면 부당해보일 수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레꾼과 마을주민이 공존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법임을 알수 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기술과학 > 수산업
생산연도
2015
저자명
송기태
소장처
KCI
조회
20
첨부파일
서남해 무레꾼 전통의 변화와 지속.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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