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비 열녀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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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국지
고려말 조천읍 신촌리 국지는 품관 ‘홍질’이란 사람과 결혼하였는데, 수일 만에 남편이 목숨을 잃어 청상과부가 되었음
- 세상 사람들은 국지의 고운 얼굴에 반하여 재혼의 청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하고 정절을 지킴
- 국지의 미모와 아름다움에 반해서 아내로 맞이하고자 남성들은 온갖 행패를 부렸는데, 그녀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시가로 옮겨가서 살았음
- 물을 길러 가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결혼해 달라고 애원하자, 분하고 원통한 국지는 집으로 돌아와 왼쪽 손목을 작두로 잘라 버림
- 마을 사람들은 국지의 정절을 꺾을 수 없음을 알고서 행패부리지 않았음
- 국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결국 수절했고, 사람들은 정절을 지킨 아름다운 마음씨를 높이 칭송하고 정절의 표본으로 삼음
- 국지에 대한 칭송이 퍼져 관에까지 알려지자 1634년에 나라에서 국지를 열녀라 칭하고 국지문이란 비석을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