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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야기 채록 - 온평리 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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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만(온평리)

 

「고을나」, 「부을나」, 「양을나」 세 신이 해안을 따라 사냥을 하며 이동하던 중 「온평리」에 있는 속칭 「화성개」에 이르렀을 때, 물결에 떠밀려오는 세 개의 궤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고을나」가 먼저 발견하고,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세 신이 모여 바라보니 과연 궤짝이 떠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세 신이 유쾌한 소리를 질렀다고 하여, 이곳을 「화성개」 또는 「쾌성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궤짝은 「화성개」에서 한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닿았는데, 세 신인은 그 궤짝을 따라가 이를 열어 보니 세 선녀와 오곡의 씨앗, 그리고 송아지와 망아지 등의 가축이 있었는데, 그때가 마치 저녁 무렵이라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 황금빛 노을이 출렁이매 이 궤짝이 닿은 바닷가를 「황노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이름은 「황날」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 신인은 말을 타고 세 처녀와 더불어 「삼성혈」이 있는 제주시 쪽으로 떠나는데, (그 때 바위 위에 찍혀진 말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함) 「황노알」을 떠난 일행은 바닷가에서 한 1킬로쯤 떨어져 있는 곳에 수목이 울창하고 큰 못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당도하게 되니, 이곳에서 말을 내려 못에서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후, 이곳에서 혼인을 하니 이제 날은 어두워지고 이 못가의 굴에서 밤을 지냈다고 한다.

  이 못은 마을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흰죽」이라고 했고,  세을나와 세 처녀가 혼인을 했던 못이라 하여 「혼인지(婚姻池)」 또는 「혼인지(婚姻趾)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혼인지 바로 곁에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는 세 신인들이 혼인을 하고 초야를 보내고 얼마쯤 살게 되었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아다 먹곤 하였는데, 이 바닷가를 「연혼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세신인은 여기에 살면서 나무에 오르기와 활쏘기 등으로 재주를 겨루어 형제의 순위를 정했다고 한다. (『탐라문화』, 제14집,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1994.)

유형
동영상
학문분야
문학 > 구비문학
생산연도
2015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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