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명도암선생 문간공파세보
분야별정보 > 문학 > 구비문학
김진용(金晉鎔, 1605년(선조 38년)~1663(현종4년))
❍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진숙(晉叔), 호는 명도암 (明道菴), 제주에 유배왔던 이익에게 수학하였고, 경서에 밝고 행실이 깨끗한 것으로 칭송되었는데,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년)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평생 고향에서 후학을 훈육하였는데 뒷사람들은 살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명도암 선생이라고 부름
❍ 목사 이괴가 장수당을 성 남쪽 경내 안에 세우고, 이괴가 3읍의 선비들에게 학문을 장려하면서 진사 김진용을 불러 스승으로 삼아서, 진용의 의견에 따라 학당을 성 남쪽안, 영곡(靈谷) 고득종의 옛집터에 짓고 장수당이라고 편액하여 학문을 일으킴
❍ 일이 마무리되자 모곡(耗穀) 300곡을 청하여 얻고, 또한 관아에 쌓아둔 것 중에서 수백석을 떼어 재생의 늠료를 마련하였다고 함
❍ 1831년 (순조 31년)유생들이 그를 영혜사(永惠詞)에 추향하였는데, 이 영혜사는 이약동(李約東), 이괴(李襘), 이형상(李衡祥), 김정, 김진용 5위와 이예연, 임형수를 추향함
❍ 1965년 10월 명도암 선생 탄신 기념으로 ‘명도암 김진용선생 유허비’를 명도암 산기슭에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