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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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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_삼성혈비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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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혈비(三姓穴碑)

  현재 삼성혈에는 총 10기의 비석이 소재하고 있다. 경내에 2기, 삼사석비 1기, 목사비군 7기가 그것이다. 전시관 앞의 삼사석비는 화북1동 삼사석지에 매장되어 있던 김정 목사 건립 초기의 삼사석비를 발굴하여 삼성혈로 이송하여 세운 것이다. 

  「고려사」 등의 삼성신화에 따르면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기슭에서 솟아 나왔는데, 이곳을 모흥혈(毛興穴)이라고 전한다. 이 모흥혈이 지금의 삼성혈인데 삼신(三神)이 솟아났다는 구멍은 메워졌지만 아직도 깊숙한 흠이 그대로 남아있다. 주위에 보호책을 두르고 사람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이곳에 혈단(穴壇)이 마련되고 삼성혈비가 서있다.

  「증보탐라지」에 의하면 1526년(중종 21)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이곳에 처음으로 단(壇)을 마련하고 비를 세운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그 비는 없어지고 지금의 비는 1856년(철종 7)에 새로 세운 것이다. 「고씨세록(高氏世祿」에는 대정현감을 지낸 고성규(高性奎)가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전면 : 三姓穴

    ▲후면 : 崇禎後四丙辰夏 改竪

    △후면 해석(건립연대) : 승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1628~1644)의 연호이므로 승정 기원은 1628년이다. 승정 기원후 4번째의 병진년은 1856년으로 이해 여름에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 연호로는 함풍(咸豊) 6년에 해당되지만 당시 사대부들은 오랑캐로 여기는 청의 연호를 거부하고 중국의 정통 한족이 세운 명의 연호를 사용함. 특히 비문에 용례가 많이 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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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씨종문회총본부 (재) 탐라종묘문화재단, 『탐라성주』 제 17호, 2016년​

유형
사진
학문분야
문학 > 구비문학
생산연도
2017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7
첨부파일
삼성혈비 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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