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공본풀이의 초월공간과 중심공간

분야별정보 > 문학 > 구비문학



 탐라문화 36호

 

<초공본풀이>에 나타나는 수평-수직 공간은 가로축과 세로축의 대립이 확연히 드러난다. 임진국대감집, 서강땅, 서울로 정리되는 가로축은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들이다. 기자치성을 드려 딸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사회 어느 곳에서든 늘 일어나는 일을 되풀이한다. 서울은 세속적인 견지에서 성공을 집약하는 공간이다. 서강땅에서 아기씨가 하는 일은 삼형제를 낳고 힘들여 키우는 것이다. 이 세 공간은 현실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과거에 합격하여 출세하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과정이고 목표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것으로 완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황금산, 서강땅, 삼천천제석궁의 세로축이 보여준다. 일상적 삶은 죽음에 의해 파탄에 이른다. 삶은 유지되어야 하는데 죽음이 이를 막는다. 어떤 성공적인 삶도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할 뿐이다. 또 일상을 너머선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게 된다. 노가단풍 아기씨도 삼멩두도 저 높은 곳 황금산에를 다녀와야 한다. 결국 가로축에 있는 현실 차원의 일상적 삶이 부딪치는 두 상황을 요약하면 죽음과 초월이다. 이는 <초공본풀이>가 삶의 딜레마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딜레마, 삶은 먹고 사는 현실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는 딜레마. 이 두 가지 딜레마는 인간이기에 겪게 되는 삶의 모순이다. <초공본풀이>는 이 딜레마를 다루는 수많은 신화 또는 종교와 맥을 같이 한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초공본풀이>의 방법은 무엇인가? 노가단풍 아기씨는 황금산에 오르기 위해 그 먼 길을 힘겹게 갔고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인 죽음의 고통을 겪었다. 이런 고통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그 길이 중심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중심은 성스러운 곳이다. 초월을 얻기 위해 죽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많은 신화의 공통 화제이다. 이것을 알고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스스로가 중심이 된다. 중심은 흔히 사원이나 신전, 성지 등 만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한 곳은 초월적인 하늘과 자기가 속한 땅과 지하세계를 잇는 곳으로 생각되기에 중심이라고 인정된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지적했듯이 중심은 수없이 많을 수 있으며 수없이 만들 수도 있다. 이 서사시 끝에 삼멩두가 굿당을 만든 것도 중심의 창건일 것이고, 당클을 매고 이 노래를 부르고 이 의례를 거행하는 곳이 모두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자기 안에서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중심이 된다. 자기 안에서 초월을 수용하고 고난을 수용하고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땅에 매인 인간을 벗어나 진정한 초월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움직이는 사원이고 신전인 것이다. 한편의 짜임새 있는 신화로서 <초공본풀이>는 삶의 모범이 되는 양식(mode)을 제시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곧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일정한 규범을 제시해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문학 > 구비문학
생산연도
2010
저자명
신연우
소장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조회
32
첨부파일
2.신연우(탐라36).pdf

이 자료의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사용 시 원저작권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