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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제주삼현도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1750년(英祖 26년)경에 제작한 전국 군현지도첩 [해동지도] 제 7책 중에 수록된 제주도 지도. [해동지도]에는 두 종의 제주도 지도가 실려 있다. 지도 앞 면에 기록된 주기(註記)에 의하면, [해동지도]를 제작할 당시 제주목에는 목판으로 간행한 인본(印本) 2종이 있어, 두 종의 지도를 모두 수록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이 지도는 당시 제주읍에 보관하던 목판본 지도 중 한 벌을 모사한 것인데, 지도의 내용을 살펴 보면 1709년(肅宗 35년)에 간행된 [탐라지도병서]를 모사한 지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목은 지금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이며 읍치는 제주시 삼도동 일대에 있었다. 대정현은 지금의남제주군 대정읍·안덕면·서귀포시 서쪽에 해당하며 읍치는 대정읍 안성리·인성리·보성리 일대에 있었다. 정의현은 남제주군 성산읍·표선면·남원읍·서귀포시 동쪽에 해당하며 읍치는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다.지도의 아래쪽에는 전라도 남해안의여러 고을, 오른쪽에는 중국 북부해안이 표시되어 있고, 위쪽에는 중국 남부해안 및 현재의 베트남인 安南國과 오끼나와인 琉球國, 일본의 一岐島 등이, 오른쪽에는 일본 본토와 對馬島가 적혀 있다. 지도에서는 고을의 鎭山인 한라산의 白鹿潭이 강조되어 신비한 느낌을 주고 있음이 눈에 뜨이고, 거대한 무덤처럼 수없이 솟아있는 寄生火山 오름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들이 해안가로 줄지어 내려가는 모습도 그려져 있는데, 이런 하천은 화산 폭발에 의한 多孔質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乾川이 대부분이다. 한라산을 둘러싸고 一所부터 十所까지 노란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는 곳은 말을 기르는 목장으로서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다. 해안가에도 여러 개의 馬場이 보이고 있다. 기타 해안가의 전략적 요충에 수많은 烽臺가 만들어져 해안 감시를 맡게 하였으며 古縣과 각종 마을 이름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앞의 지도보다 산과 하천의 표현이 매우 간략하게 처리되었음이 눈에 띈다. 白鹿潭은 여전히 부각되어 있으나 가운데의 우뚝 솟아 동서로 걸쳐 있는 한라산의 모습이 강조되고 기타 오름은 작은 크기로 표현되었다. 한라산 산간 중턱에 있는 여러 목장이 울타리가 쳐진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果樹園의 표시도 자세하다. 앞의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읍성이 굴곡의 모양까지도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특히 제주 읍성 안에는 여러 관아시설을 상세하게 표현하였다.이런 건물 중 김상헌·송시열을 비롯하여 제주에 귀양왔던 여러 사람을 배향하고 1682년(숙종 8)에 賜額받은 제주 유일의 橘林書院도 보인다. 읍성 위쪽으로는 제주 탐라국의 조상으로 받들어지는 良乙那, 高乙那, 夫乙那가 나왔다는 三姓穴이 毛興穴로 표시되어 있으며, 이 三姓에게 제사지내던 三姓壇의 모습도 보인다. 그 위쪽으로는 한라산의 護國神에게 제사지내던 廣壤壇이 있다. 해안가에는 대규모의병력이 상륙할 수 있는 지점에 성을 쌓아 병졸을 주둔시키던 防護所를 자세히 그렸는데, 제주 읍성 왼쪽의 朝天館은 제주도에서 본토로 떠나는 배들이 출발하던 곳으로서 배의 모습을 그려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기타 烈女門 2개, 孝子門 1개가 특별히 표시되어 있음이 특이하고 涯月所 위쪽으로는 고려 때 몽고에게 항복하기를 반대하여 끝까지 저항했던 三別抄의 고성이 표시되어 있다.(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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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고지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750
저자명
미상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회
758
Link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R33469_00&vol_no=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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