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구제에 빌려쓴 곡식을 돌려받지 않고 면제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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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목사(濟州牧事) 조희순(趙羲純)의 장계(狀啓)를 보니, ‘세 고을의 설진(設賑)이 방금 끝났습니다. 이전미(移轉米) 2,000석(石)은 공곡(公穀)이니, 응당 도로 바쳐야 하겠으나 섬 안에 있는 백성들의 먹을 것이 매번 육지의 곡식을 의지하고 있으니, 본색(本色)으로 수량을 맞추어 바치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별히 상정가(詳定價)로 대전(代錢)하도록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