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과의 통교선을 건조하는 일을 포기하다(문종 12년,105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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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을사에 왕이 탐라와 영암에서 목재를 베어 큰 배를 만들고 장차 송나라와 통상하고자 하니,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에서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북조(北朝:거란)와 우호를 맺어 변방에 위급한 경보가 없고, 백성들은 그 생업을 즐거이 하니, 이로써 나라를 보전함이 상책이옵니다. 우리 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 이미 오래며, 상선의 연락도 끊기지 않으니, 귀중한 보물은 날로 들어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실로 도움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만일 거란(契丹)가 국교를 영원히 끊지 않을 것이라면 송나라와 사절을 교환함을 마땅치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에 따랐다. (제주문화방송 「속탐라록」, 1994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