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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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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제주 삼별초를 토벌할 원군을 요청하다(원종 13년,1272년 5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갑신에 합문부사 금훈(琴熏)을 원(元)에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지극한 인자함으로 죄를 용서함으로써 행여나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질까 하였더니, 도망간 역적들은 미혹함을 고집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만 방자하여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전번 도성(都省:尙書省)에서 아뢴 봉지항선(奉指降宣:황제의 뜻을 받들어 항복을 선유함)을 받들어 제주에 초유사를 파견하였습니다. 합문부사 금훈(琴熏)과 산원 이정(李貞)이 4월 15일에 배를 타고 출발하였는데, 마침 역풍으로 보마도(甫麻島)에 정박하였습니다. 역적 김희취(金希就)·오인봉(吳仁鳳)·전우(田祐)등의 배 4척이 와서 그 배를 빼았고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서 저들의 배로 옮겼으며 초유문(招諭文)은 압수하고 가서 제주의 김통정(金通精)에게 아뢰었습니다. 김희취 등은 금훈 등을 데리고 추자도에 이르러 억류하고 감시하였습니다. 김통정으로부터 회보를 얻자 김희취 등은 금훈 등에게 거만하게 욕하고 꾸짖어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사람을 진도에 보내어 우리를 꾀어 마음을 해이하게 하고는,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여 파하게 하였다. 대저 부모 처자는 인정 상 가장 애중한 것인데 모두 잡아갔으니 이에 우리의 원한은 골수에 사무쳤다. 지금 또 우리를 진멸하고자 꾀이러 왔으니 너희들을 웅당 모두 죽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면 이번 일의 뜻을 누가 가서 말하겠느냐? 이에 너희를 놓아 보내는 것이다."하고 썩고 작은 배 한 척과 늙은 사공 한 사람과 아울러 초유문을 돌려 보내었습니다. 그 일행 속에 기관(記官) 전리(電吏) 초공(梢工) 인해(引海) 등 4명은 모두 죽였고, 나머지 사공 10명도 역시 죽이고자 끌고 갔습니다. 금훈 등은 섬 속을 머뭇거리다가 사공 중에 죽음을 면한 3인을 만나 지난달 29일에 돌아왔으므로 곧 상조(上朝)로 하여금 이런 사유를 진주(陳奏)케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러한 실정을 굽어 거두어 들으시고, 긍종(矜從)을 내리시어 분위(分委) 융병(戎兵)으로 하여금 만일 위험을 빛내고 벌을 내리기에 이르러서 완악한 무리들을 능히 깨끗이 한다면, 무릇 남겨진 백성들이 힘입어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하였다. (제주문화방송 「속탐라록」, 1994 발췌)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451
저자명
정인지 외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조회
26
Link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detail/kr_027_0020_0050_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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